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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小熊秀雄

一九四〇年

by wannee 2022.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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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九四

現代大衆文学批判

――ユーモア小説

 

 後味뒷맛이 않좋은 웃음

 

 ユーモア小説いてはよりも一般読者諸者数多んでをられることとそこで読者はどんな感想てをられるか世上のユーモア小説なるものはしが非常しかしつてしまつてからたいへん後味いものをずるに相違ないその後味さといふものはどういふことであるか一般市民といふものはひとつの事実してこれはどういふことであるかとくなるほど熟考するといふことがつてない内容的くゼロな娯楽小説本してもまた頭脳負担いものをめてみつしそして忘却する

 

유머소설에 관해서는 나보다도 일반독자제군들이 많이들 읽었다고는 생각하는데 독자는 어떤 감상을 얻는것일까? 세상의 유머소설이라 하는것은 주욱 흟어보는것은 좋으나 다 읽고나버린 뒤에 대단히 그 뒷맛이 나쁘다는것을 느낌은 틀림이 없는데 그 뒷맛이 좋지 않다는것은 어떤것일까? 일반시민이라 하는것은 하나의 사실에 대하여 이것은 어떤것인가? 머리가 아플만큼 숙고해본일이 대단히 적으며 내용적으로 전혀 제로상태인 오락소설에 대하여도,또 두뇌의 부담이 가벼운것을 추구한들 읽고나서 그리고 망각한다.

 

 文学とか文壇とかいろいろの既定的人情習慣んでゐない一般読者かしい小説みながらもくそのかしさにへられてしまふわけではないんだつまらん――」といふだけの最小限度批判をもつてゐる々は一般国民読者のこの最小限度批判唯一りどころにする一般読者批判喪失させるやうな文章くことをるのである

 

문학이라던가,문단등 여러 가지의 한정적인 인정습관의 둥지에 살고 있지 않은 일반독자는 엉터리 같은 소설을 읽으면서도 전혀 그 엉터리에 사로잡히어 놀아나지만은 않고<뭐야 이건....>라고 할정도의 최소한도의 비판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들은 먼저 일반국민독자의 이러한 최소한도의 비판을 유일한 의지처로 하는 일반독자에 비판을 상실시키려 하는 문장을 씀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大衆文学全体てはめなければならない作家良心的りどころははそのところにあるのであるユーモア作家自身作品素材といふことをのぞくときさうした大衆接触する作家道徳的にも問題非常いことをるであらうユーモア小説材料はいつたいどのやうな分布状態取材されてゐるだらうかブラマンカフェ[#「底本では小文字女給恋人デパートの売子ダンサーマネキン喫茶娘などであるユーモア作家もその材料超克してしい材料みつくといふ気力くない。「きみけふはがしいにつきあつてくれないといつたおまりの会話をはさむことによつて彼女青年ブラをやがて銀座ることが定石なのであるユーモア作家材料的消費享楽方面克服できないといふ理由にはこの作家たちもさうした生活圏以外生活圏をもつてゐないといふこととものをへるといふ自由のものにもしいユーモア作品もつと具体的へばユーモアな現実思惟触手をのばすといふ気魄もないのである

 

대중문학전체에 적합하게 손을 대지 않으면 안되는 작가의 양심적인 의지처는 실은 그곳에 있는 것이다. 유머작가 자신의 작품소재라고 하는것을 들여다 보면 그러한 대중에 접촉하는 작가가 전혀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대단히 많음을 알것이고,유머소설의 재료는 도대체 어떠한 분포상태에서 취재되고 있는것인가? 은 브라만,카페의 여급,옛날의 애인,백화점의 판매원,댄서,마네킹,찻집아가씨 등이다. 유머작가는 더더욱 그 재료를 초극하여 새로운 재료로 짜맞춘다는 기력이 전혀 없다,

 

 木邦氏獅子文六氏のやうなユーモア作家はその素材のナンセンスユーモア作家とはつてゐるが結局いて作品限界文学的にも政治的にもちやんと心得てゐるといふ意味ユーモア作家諷刺作家にとつての、「不必要限界しさうにんでゐるにまるであらう

 

木邦氏獅子文六氏와 같은 유모아작가는 그 재료는 다른 난센스,유모아작가와는 다르지만 결국에 있어서는 작품의 한계를 문학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짠~하고 마음으로 터득하고 있다는 의미로,유모아 작가나 풍자작가에 있어서의 <불필요한 한계>를 즐기는듯이 장난하고 있음에 그치는것일것이리라.

 

 ドストイヱフスキイはその日記知識間違感情間違区別してつてゐる現代のユーモア作家その材料知性的でもないし啓発的でもないし知識的でもないのであるつて作品れも分析的要素けた、「感情的間違ひだらけの作品なのである

 ドフトイヱフスキイはつてゐる。「知識間違ひであればきた実際生活出来事否認しがたき論法によつてなすだけそれだけ――ところが感情間違ひはろしく大切なものであるこれはもはや悪毒まつた精神であると――」現代のユーモア作家そのくものは知識的でなくて感情間違ひだらけであるとへるであらう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일기속에서<지식의 그릇됨><감정의 그릇됨>을 구별해서 말하고 있다. 현대의 유모아 작가는 그 재료가 전혀 지성적이지도 않고 계발적이지도 않으며 지식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작품은 어느것이나 분석적요소가 결핍된 <감정적인 거짓투성이의 작품>인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말하고 있다.<지식이 잘못되어 있으면,많은 기존의 실제생활의 일들을 부인하는 논법에 의하여 그런대로 그렇게 쉽게 치유가 된다_ 그러나 감정의 그릇됨은 아마도 대단히 의미심장한 문제이다. 이것은 이미 악독에 물이 든 정신이다..> 현대의 유모아 작가는 그 작품의 재료가 지식적인것이 아니고 감정의 거짓뿐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것이라.

 

 愛読者心理解剖

 

 現在のユーモア小説類だくだらないものがいといふこともしてくべきことでもユーモア小説自身不幸性質のものでもないがこゝでユーモア文学ずることゝはこの作家批評家言葉もまた読者そのものをもからのんでかゝつてゐる内気筆致などゝいふものはないれも々しさでてられた文章なのである

 

 しかしこれらの内容的貧弱大衆文学読者愛読してゐるといふことがして一般読者ユーモア小説むほどかしいものだとはへない大学角帽をかぶつた学生電車つまらぬ講談類雑誌んでゐるもつともありさうなものだと――はずはその大学生をみるしかしこの大学生ずさうしたクダラヌ読物をみてゐるからといつて劣等生とはひきれない何故なら大衆文学全体れてこの文学大衆へるところの特長劣等生にも優等生にも悪市民にも善良市民にも所謂すべての大衆読書感情収容するといふところにある

 しかしそれでは大学生かしい大衆講談一般市民出来いユーモア小説むことを肯定していゝだらうか人生時間といふものがないのであれば放任状態であつていゝしかしかうしてといふ批評家ユーモア文学悪態をつか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ふことも有限時間でのひとつの事業なのであるそのことは一般読者々に所有してゐる時間如何使はれてゐるかといふことと関係してゐる

 

 最近始めて少女歌劇なるものをそして非常感心ある感動さへしたのである々が少年ガラス三枚合せて赤青をその三角形れていてしんだこの玩具万華鏡とそつくりの舞台転換しさがこの少女レビュー歌劇にあつた通俗的意味色彩豊富なやうに舞台仕組まれてあるしめまぐるしさと華麗究極点してゐたといふべきだらうぶのもむりがない又娘内緒母親つてふのも無理がないとはれるものがあるしかし少女歌劇感想つたわけではない少女歌劇なるものゝ形式はわかつたしかしるところはその内容なのであるはこののものは一度だけで沢山なのであるしかしにはそこに反復通娘達いのである

 

 この事実してこれらの事実実際にある――といふことを見遁さないやうにして結論的なものをさなければならない一言でいへば少女歌劇現在のユーモア作品講談茶番的対話四月馬鹿のやうに公然をつくことなどの内容への吟味これは社会政策関聯があるそれは無害であるにひないこの無害なものは有害でないといふ意味放任されてをいてよいか々は愚劣して精神解放といふ意味からときにはそれをんで興味があるしかしそれを何度反復した場合にどんな結果ずるかといふことをへないわけにはいかない現在のユーモア小説しては少女レビューと同様一度だけで沢山なのであるしかしよしそれらのものが無害内容をもつたとしてもユーモア作家作家的良心くない場合無害であるが何時ひるといふ意味彼等民衆からの時間奪取者であり大衆無智部分保留しようとしての忠実努力者だといへるであらう

 

 ナンセンスの社会学

 

 のない読物であればそれが無害であるといふ理由でどれほど反覆流布されてゐてもいゝものであるかどうか無害なものは有害でないといふ意味通用のさばつてゐるものがまことに一言へばそれはつてもなくてもいゝものだだからがいゝのだ内務省警視庁取締方針にはそこのところがはつきりしないものがあるつまり無害なものは無益であるといふ意味有害であるといふ取締方針がたつてゐるかどうかなぜはそのことを明瞭ることができるかといふに大人通俗読物して子供通俗読物のことをべてへてみるからである

 

 そのことにいては内務省でもいたである子供読物のナンセンス卑俗化がそれであるしかも現在子供読物卑俗化したといふ道筋へてみるとめから読物であつたわけではあるまいめは無害状態それから漸次有害なものとなつたであらうそして現在はどうか当局取締りがいて子供読物はたいへん無害なものがくなつてきたのである

 

 子供のかつての読物からは素材されたがそれとりかはりに素材らなかつたさうした意味現在子供読物出版消極的可能性出版業者子供物執筆者つてゐるさへすればいといふ検閲通過立前から一見有益さうにみえる無害読物がでゝゐるのであるそこのつの問題基点となる子供といふ肉体的精神的成育のはげしいものに無害なナンセンスなものを何時状態へてをいてどういふことになるかマイナスりつづくやうな読物へておいていゝだらうか何時もゲラゲラつてゐるナンセンス青年をつくりあげるための子供読物がまことに国家文化的政策かなさがすでに子供からその読物によつて国民精神的肉体的弱体化はれてゐるのである

 このことは大人読物てはまるのである大人子供りがないのである思索的訓練けたところに立派国民的人格はないのである

 

 ユーモア小説とかナンセンス小説にはむしろさうしたれた害悪性その害悪性はとかく見遁されちである何故であらうそれは無害読物のやうにじさせるからであるこれらの大衆にうける最大理由読者精力消費節約にあるといはれてゐるむのに負担がかゝらないといふことが条件となつてゐるしかしそのことはそれだけではまないそれは民衆享楽的でありたいといふその慾望これらの大衆小説出版者執筆者忠実してゐるユーモア作家ではさうしたユーモア小説そのものが包含してゐる悪徳性合理化ささうとして精一杯文章小細工をしてゐる作者見受けるブラ分子軽蔑してゐるものだとかかういふ手輩満洲つて精神れかへてくるべきだなどと国策的教訓的一章へて文章全体りリボンにしようとしてゐるしかし大人もまた発育するものとめてはかうした無害ではあらうが国民啓発するものをもたない作家作品とを否定したいそれは無益なものは有益でないといふ立前からである

 

 

 

無題

 

小熊秀雄(오쿠마 히데오)

 

 稀代妖婦事件があつた精神分析学者ういふ意見発表してゐた

 それはお性的象徴物げする心理サロメ心理卵子本能がそれをさせた――といふのであるそこまでは肯定してをくとして戦争びつけて男性女性象徴であつて昔時戦争つて凱旋してきたのは屈服した女性なして上下倒錯心理であるといふのである

 

稀代妖婦 오죠오 사건이 있던 무렵 어는 정신분석학자가 이러한 의견을 발표 하였다. 그것은 오죠오가 性的상징물을 갖고 달아나는 심리는 salome心理로 오죠오의 卵子본능이 그렇게 만들었다___하고 말하는 것이다,거기까지는 긍정해 놓고서 그는 전쟁과 결부시키어 코는 남성을 눈은 여성의 상징이었고 옛날의 전쟁에 귀를 잘라 凱旋한 것은 굴복한 적을 여성으로 보고서 가지고 돌아가는 上下倒錯의 심리라고 하는 것이다.

 

 とかく非科学的心理学者一切心理現象びつけたがるがここでも戦争などといふ切迫した現実的事件性一色りつぶして解釈しようとてる今度支部事変には優秀心理学者従軍してゐるがはそれをつたときさすがは文化国だけはあると感心したものだ兵器操作もさることながら心理学者戦場ける兵士心理状態研究するといふ仕事今後戦争寄与することがきいであるそして戦時中心理学者はみな戦線兵士心理状態調べたらいいし戦争んだら銃後国民心理状態調べることが報国的である戦争つにもけるにも卵子本能だなどといふ馬鹿気くとも戦争といふものを侮辱したといへるだらう

 

어쨌거나 비과학적인 심리학자는 일체의 심리현상을 과 결부하고 싶지만 여기서도 전쟁등이라 하는 절박한 현실적인 사건을 일색으로 착색해서 해석하려 하며 이번의 支部事變에는 우수한 심리학자가 종군하고 있지만 나는 그것을 알았을 때 과연 文化國이기는 하구나 하고 감동한 것이며 무기의 조작도 하면서 심리학자가 전장에 있어서의 병사의 심리상태를 연구 한다고 하는 일도 今後전쟁에 기여하는 바가 커야만 할것이며 그리고 戰時중에는 심리학자는 모두 전선에 나가서 병사의 심리상태를 조사하면 좋으며 전쟁이 끝나면 총뒤의 국민의 심리상태를 조사하는 것이 報國적이고

전쟁에 이기는 것도 지는 것에도 卵子본능이다 라고 하는 바보같은 사고방식은 적어도 전쟁이라고 하는 것을 모욕한 사고방식이라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候共捨耳鼻ばかり――』日本大将下知をしてゐるかういふ命令ると雑兵達漬物をつけるときにキャベツをふやうにがしながら手早くそのからぎとるのであるもそのびるをかけてそぎとる理由びるをかけてぐともくつつくからである必要とするのはがついてゐないとわらべのものをつてきても大将誤魔化されるからだこれでみると戦場にはでこなしてやれ――といふ不心得者がゐてわらべ所謂今でいふ非戦闘員まできあつめて論巧にあづからうとしたものらしいもしやしてゐなかつた場合には若年者なく候付何其物道具取可申侯事念入りに命令してゐる

 

<목을 따되 버리고 귀와 코만___>하고 일본 옛날의 大將이 명령을 하고 이러한 명령이 내려지면 졸병들은 적의 목을 김치 담글때에 배추를 다루듯이 굴리면서 재빠르게 그 목에서 귀와 코를 잘라 내는 것이며 게다가 그 자르는 방법도 입같은 것을 걸어서 잘라 내며 이유는 입같은 것을 걸어서 자르면 반드시 수염도 붙어 있기 때문이고 수염을 필요로 하는 것은 수염이 붙어 있지 않으면<여자, 어린애>의 것을 가지고 와도 大將은 잘못 혼동되기 때문이니 이것으로 보면 옛날 전장에는 로  처리하자___라고 하는 무분별한 것이 있어 여자,어린애 소위 지금으로 말하는 비전투원의 목까지  모아서 論巧하게 취급하였던 싶으며 만일 적이 젊은 남자로 수염을 기르지 않았던 경우에는 <젊은이가 수염이 없는 경우에는 뭔가 그 물건의 道具를 취함도 할것임>하고 신중하게 명령을 한다.

 

 これでみてもるのは女性なすなどといふ心理主義者実際戦争への参加者実利的効果的へとはちがふ一枚でもたといふことが自己武勇証明勲巧関係するといふ切実問題なのである

 

이것으로 보아도 귀를 자른다는 것은 적을 여성으로 본다고 하는 심리주의자의 사고방식과 실제의 전쟁에의 참가자의 실리적 효과적인 생각과는 다르며 하나라도 귀를 많이 얻는다고 하는 것이 자신의 武勇을 증명하고 勳功에 관계한다고 하는 절실한 문제인 것이다.

 

 戦争つの錯倒心理むといふにも疑問がある突然味方塹壕からとびしてつてゆかうとする味方つてつてへつけるするとはまもなく昂奮つてけろりとしてしまふといふ塹壕病患者であつてもかうした心理錯倒状態すには恐怖といふ心理らないやうな環境したらつてしまふのであるアニシーモフといふ反逆者死刑場きだされるときはせかせかと自分帽子めた、『さあだですか――』とロシヤ将校にきくとぐです……一寸帽子』『そんなうでもいゝです帽子なんかくたつてひません――』といつてゐる

 

전쟁이 하나의 도착심리를 낳는다고 하는 사고방식중에도 의문이 있으며 돌연 아군의 塹壕에서 튀어 나가서 적군으로 달려 가려고 하면 아군들은 몰려 와서 그를 저지하며,하면 그는 갑자기 흥분이 사라지고 정신을 차리고 만다고 하는 참호병 환자였다 하여도 이러한 심리의 도착상태를 치료하려면 그의 마음속에 공포라고 하는 심리가 일어나지 않을듯한 다른 환경에 그를 옮기면 고칠수가 있는 것이다.아니시모프 라는 반역자가 사형장에 끌려 나갈 때 그는 불안하게 자신의 모자를 찾기 시작했으며 <!아직도!!>하고 러시아 장교가 그에게 묻자 <금방입니다..작은 모자가!!>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아!모자 따위 없어도 관계 없어!>라고 말하고 있다.

 

 いま死刑にされる何時ものやうに帽子をかぶらなければまない心理といふものは逆上心理ではない平和といふコップに人間がいれられてゐると仮定してこのコップをにひつくりかへして卓上にをいたとしたら人間さまになつてへてゐるより仕方がないだらうか錯倒心理ずるのが穏当だと

 

지금 사형을 당하는 남자가 어느때처럼 모자를 쓰지 않으면 맘이 안 놓이다고 하는 심리라고 하는 것은 逆上의 심리는 아니며 평화라고 하는 cup에 인간이 들어가 있다고 가정하여 이 cup을 갑자기 뒤집어서 탁자위에 올려 놓는다면 안에 있는 인간은 거꾸로 되어서 생각할 수밖에 없을뿐더러 도착의 심리를 말하기 전에 먼저 容器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한다.

 

画家詩人娘達

 

畵家,詩人,娘達 (화가,시인,아가씨들)

 

小熊秀雄(오쿠마 히데오)

 

 めこの文章かうとしたときその題材画家詩人・とだけしようとしたが画家詩人といふ階級相当にうるほひのある階級であるがやつぱり娘達へた文章がずつと豊饒になりさうながして標題のやうにした娘達はやつぱり人生だからせとしても必要なやうである文章にせよくにしても最初手順といふものが肝心だから文章めからへるといふ政策をとるといふことはすでにこの文章読者諸君最後までんでくれるといふ保証がついたやうなものであるあまり強情になつてセピアばかりを基調色にして制作しきるのはくないやつぱりはちよつぴりと画面へる必要があるとは色彩にしてみてははらない文章などいふものは殺風景まれるものではない赤系統絵具軽蔑する画家そのヱゴイズムとともに滅亡するやうなものである

 

처음에 이 문장을 쓰려고 했을 때 그 題材畵家,詩人이라고만 하려고 하였지만 畵家,詩人이라고 하는 계급은 상당히 情感이 있는 계급이지만 역시 아가씨를 넣는 쪽이 문장이 훨씬 풍요하게 될듯한 기분이 들어 標題처럼 하였고 아가씨는 역시 <인생의 꽃>이기에 具色이나 副材料로서도 필요한듯 하다.문장으로 하던지 그림을 그린다 하여도 최초의 수순이라고 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문장속에 처음부터 아가씨를 넣는다고 하는 정책을 취한다고 하는 것은 이미 이 문장을 독자제군이 최후까지 읽어 준다고 하는 보증이 붙은 듯한 것이다.너무 완고하게 되어서 暗褐色만을 기조색으로 하여 제작을

강행하는 것은 좋지 않다.역시 빨강은 조금 화면에 넣을 필요가 있다.아가씨는 색채로 보면 <빨강>이다.붉은 색이 넣어지지 않는 문장등이라고 하는 것은 殺風景으로 읽어지지 않는다.빨강 계통의 그림물감을 경멸하는 화가는 그 egoism과 함께 멸망할듯한 것이다.

 

 をつくつてゐるために非常誤解そして画家はどうかいてゐるために非常世間了解てゐるはスケッチをやりめるやうになつた動機はいろいろあるがそのつには誤解けるためといふこともあつたをうろつくことがきでさうした漂泊のうちにさまざまなきた人間姿へようとするんでゐると下町状態がわからないそれでまずくの板橋付近からビル本所浅草といふうろつきまはるさな露地みこむとそこにはひがけないやうならしい人生をみつけだすしかも下町生活者たちはどんなさなでも労働的生産的なのであるかしららないが原始的さな機械亭主してゐるとその妻君やら子供やら職人やらがやらがしく指先をうごかして商品をつくつたり部分品へたりしてゐる内職ではない内職より規模きいやうな家内工業をしてゐるがびつしりんでゐる

 

나는 를 짓고 있기 때문에 대단한 오해를 초래한다.그리고 화가는 어떤가?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세상의 了解를 얻고 있다.나는 sketch를 하기 시작한것처럼 된 동기는 여러 가지 있지만 그 하나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라고 하는 것도 있었다.나는 거리를 방황하는 것이 좋으며 그러한 거리의 漂泊속에서 다양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잡으려고 한다.고지대에 살고 있으면 서민층의 상태를 모른다.그래서 우선 가까운 板橋(이따바시)부근에서 마루 빌딩,本所(혼죠),淺草(아사쿠사)라고 하는 식으로 돌아 다닌다.작은 露地를 밟으면 그곳에는 생각도 못한듯한 진기한 인생을 발견해 낸다.게다가 서민층의 생활자들은 아무리 작은 집안에서도 노동적이고 생산적인 것이다.뭔지는 알수가 없지만 원시적이고 작은 의 기계를 집주인이 돌리고 있으면 그 옆에서 처나 아이들 職人들이 뭔가 바쁘게 손끝을 움직여 상품의 포장을 만들거나 부분품을 조립하고 있다.부업은 아니다.부업보다 조금 규모가 큰듯한 가내공업을 하고 있는 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はその状態らしくて洋服のズボンに両手つこんでそのつて有様をみてゐるしかし他人いてゐるところをてゐたりまたいてゐるからみてのやうなぼんやりつて自分たちのする仕事をみてゐるといふことは気持いことではないそれは勤勉懶怠とがあんまり対立することになるからであらう

 

나는 그 상태가 진기하여 양복 바지에 두손을 꽂고서 그 집 옆에 서서 안의 모습을 보고 있다.그러나 다른 사람이 일하고 있는것을 보고 있으면 또 일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노는 사람 같은 남자가 멍하니 서서 자신들이 하는 일을 보고 있다고 하는 것은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다.그것은 근면과 나태가 너무나도 대립하는 것이기 때문 일것이다.

 

 工場などをたくてつてゐると労働者そのだらけのこのといふ存在つの有閑階級とみて軽蔑的表情をしにはててふこともあるにとつてはらかに誤解民情視察とか労働街見学とかいふお役人的なもつたいぶつた漂泊ではないのでにまかせてあるくそしてそのじて印象をうつたものに観察的であらうとするまた無印象状態普通人感覚では平凡とされるやうな状態つておどろくやうな場合もあるさうしたさまざまな観察政治家などが到底思ひもとどかないやうな人間生活状態をさうした漂泊途上でみつけだすそしてそれを公表するそれが仕事なのであるしかしさうした目的をあるいても他人はそこに有閑さうな一人人間発見するだけであるその誤解けるためにはいつのにかスケッチブックをへてくやうになつた

 

공장 안을 보고자 서 있으면 안의 노동자가 그 기름 투성이의 얼굴로 이 나라고 하는 존재를 하나의 유한계급으로 보고 경멸적인 표정을 짓고 때로는 소리를 내어 웃기도 한다.나에게 있어서는 분명히 오해다.민정시찰이라던가 노동가의 견학이라고 하는 公人같은 무게를 잡는식의 漂泊은 아니기에 발 가는대로 걷는다.그리고 그 때에 응하여 강하게 인상을 주는것에 관찰적이고자 한다.또 전혀 無印象적인 상태,보통사람의 감각으로는 전혀 평범하게 되는듯한 상태에 오히려 놀라울듯한 경우도 있다. 그러한 여러 가지의 관찰 속에서 정치가등이 도저히 생각도 미치치 못할 듯한 인간생활의 상태를

그러한 漂泊途上에서 발견해 낸다.그리고 그것을 공표한다. 그것이 일인것이다.그러나 그러한 목적하에 거리를 걸어도 타인은 그곳에 有閑한듯한 한사람의 인간을 발견 할뿐이다. 그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나는 어느샌가 sketch-book을 안고 걷게 되었다.

 

 事変まつてからは工場地帯軍需工場付近をウロウロしてゐるとろくなはないのでその方面にはかけないことにしてゐるがもつと自由かなり工場門内ふかくりこんで労働者機械操作めてゐることができたスケッチブックをへてゐることで先方では画家だときめてくれるので材料でもめにきたものだらうといつた気安でゐてくれるしかししいことにはここでも誤解がつきまとふ画家でなくて詩人なのである――。しかしぶらでをうろついて誤解められるよりは画家誤解されて誤解をその限度打止められてゐるとしてはしかしそのうちにスケッチブックのかしらしたいといふ欲望ときにはソッといてみることもあるそのうちに次第大胆になりはてはつぴらに街頭でスケッチブックをげてかきだすといふ度胸ができてきたさうしてスケッチは数百枚にもつてしまつたそのときに本職画家のなかには小心々もなかなかにいのだとめた

 

事變이 시작되고 부터는 공장지대의 군수공장 부근을 어슬렁대고 있으면 이렇다 할만한 것은 볼수가 없기에 그 방면에는 나가지 않기로 하고 있지만 좀 자유로울 때는 제법 공장 문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노동자의 기계조작을 바라볼수가 있었다.sketch-book을 안고 있는 것으로 상대방은 화가라고 인정해 주기에 그림을 그릴 재료라도 찾으러 온것일것이라고 하는 편안한 눈으로 보아 준다.그러나 슬픈것은 여기서도 오해가 따라 붙는다.나는 畵家가 아니고 詩人인것이다.__그러나 손을 내리고 거리를 방황하여 오해를 깊게하기 보다는 畵家로 오해되어 오해를 그 한도에서 저지받는 쪽이 나로서는 기분이 좋다.그러나 그 사이에 sketch-book의 공백을 어떻게던지 더럽히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때로는 살짝 그려본 일도 있다.그러는 사이에 점차로 대담하게 되어 마침내는 공공연하게 가두에서 sketch-book을 펼쳐 그려 낸다고 하는 용기가 생겼다.그렇게 해서 sketch는 수백장이나 쌓여 버렸다.그 때에 나는 본직의 畵家중에는 소심한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自然する――といふ名目てられて東京れてきにゆく画家はかなりにある東京んでかなりになるところが東京市中でカンバスをてていてゐる画家にぶつかつたことはいといつてもいい東京市内にならないのだらうか東京中には洋画家日本画家その孵化しない玉子したらおそらく数千人はゐるにちがひないさうした多数画家んでゐるのにひとりとして風景きにでてゐないといふ不思議現象といふものをへてみたのである詩人がかうしてをうろうろしには専門外のスケッチをさへしてゐるのにどうして専門画家のスケッチに姿をみせないのだらうかトルストイがあの厖大創作をすることができたのは題材的には半生戸外生活からの収獲なのであらうにものり戦争にもはりとも格闘をしてゐる未開ひかけまはしたり狩猟もやりでヤスヤナポリアナの小学校子供達にしてさして人生深淵平易言葉かさうと努力してゐる生活戸外的経験真個うの制作期つてから実感的幻像として過去のことをつぎつぎときだし文字記録されたのであらうと

 

자연을 사랑한다___라고 하는 명목이 서고 동경을 떠나서 산이나 바다를 그리러 가는 畵家는 상당히 있다.나는 동경에 산지 상당히 된다.허지만 동경 시내에서 캔버스를 세우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畵家를 마주친 일은 전혀 없다고 하여도 좋다.동경 시내는 그림이 되지 않는것일까?동경 속에는 서양화가 일본화가의 수는 그 孵化하지 않은 알도 첨가하면 아마도 수천명은 될것에 틀림 없다.그러한 다수의 畵家가 살고 있는데도 혼자서 거리의 풍경을 그리러 나오지 않는다고 하는 이상한 현상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본것이다.詩人이 이렇게 거리를 어슬렁대며 때로는 전문외의 sketch조차 하는데도 어째서 전문의 畵家가 거리의 sketch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것일까?톨스토이가 저 방대한 창작을 할수 있었던 것은 재료적으로는 그의 半生戶外생활에서의 수확일것이라!그는 말도 타고 전쟁에도 참가하고 곰과도 격투를 하고 있다.未開의 아가씨 엉덩이도 따라 다니기도 하고 사냥도 하고 밤에는 밤으로 야스야나보리아나 마을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앞으로 하고 하나 하나 별을 가리키며 인생의 深淵을 평이한 언어로 들려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의 생활의 戶外적인 경험이 진실된 제작기로 들어가고 나서 실감적인 환상으로서 과거의 일을 지속적으로 그려 내고 문자상으로 기록된 것일것이라고 생각한다.

 

 トルストイの場合半生戸外的半生書斎的であつたといふことも後者書斎的である理由いかにも正当をうけるしかし友達小説をやる友人勉強盛りの洋画家などで書斎的室内的くないのである直感じまた直感訓練するには信頼するより手段がない。『まんがマチヱがわからんからちよつとさはらして――』とモデルに懇願する彫刻家もあるさうであるが機能をさういふ軽蔑してゐるこのやうな彫刻家になどはさはらしてやつたところでるものではないだらう画家読書欲望いことはからのことでまた昔気質洋画家仲間では絵描きがんでゐるなんて――からそのことを馬鹿にしたものであるそれは技術本位職人性尊重する時代風習であつた理屈をいふよりも――といふ作家態度れた態度だといふことになつてゐた

 

톨스토이의 경우 半生戶外적이고 半生書齋적 이었다고 하는 것도 후자의 書齋적인 이유도 상당히 정당한 느낌을 받는다.그러나 나의 친구의 젊은 소설을 하는 友人이나 젊은 한창 공부중인 서양화가등에서 전혀 젊은 주제에 書齋,室內적인 사람이 적지 않은것이다.직감을 믿고 직감을 훈련하는 것은 눈을 신뢰하는것 이외는 수단이 없다.<자네!미안하지만 마찌에를 모르니까 좀 만져 주게__>하고 모델에게 애원하는 조각가도 있다고 하지만 눈의 기능을 그러한 식으로 경멸하고 있는 이러한 조각가 등은 만져 준다고 해서 아는것은 아닐것이다.畵家는 독서의 욕망이 낮다고 하는것은 옛날부터의 일로 또 옛날 기질의 서양화가 중에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책을 읽고 있다는 둥___하고 머리부터 그것을 바보로 한 것이다.그것은 기술본위의 職人性을 존중하는 시대의 풍습이었으며 책을 읽고 논리를 말하기 보다는 그리게!__라고 하는 작가태도가 훌륭한 태도라고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しかし時勢りちがつてきてゐる近頃若手画家のアトリヱには文筆家以上書棚をぎつちりめてゐるくないなどは是非読んでおかなければいけないとつてゐた文学専門外画家書棚にちやんとあるつたままでつたままで永久にそこの位置にをかれたままであるとしてもみたいとへながらも手元にもゑておかないでゐるよりは勉強家なのである

 

그러나 時勢는 조금은 달라지고 있다,요즈음의 젊은 화가의 아트리에 에는 문필가 이상으로 책장에 책을 빽빽이 채우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나는 꼭 읽어두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문학책이 전문외의 화가 책장에 쨘~하고 있다.설령 산채로 장식한 채로 영구히 그곳의 위치에 놓아 둔채로 한다 하여도 읽고 싶다고 생각은 하지만 손 가까이에 놓아 두지 않고 있는 나보다는 공부파인것이다.

 

 画家読書力全体にはんになりジイドやドストイヱフスキイやしい哲学書などをへてゐる

 

화가의 독서력은 전체적으로는 활성화 되어 지이드나 도스토에프스키나 새로운 철학서 등을 갖추고 있다.

 

 

都会糖分(도회와 당분) 1940

 

小熊秀雄(오쿠마 히데오)

 

 

 国民生活無駄排除といふことがばれてゐるしこれは都会人にそれをめることはできないし地方人にはまたとつくに無駄などといふものはないであらう、『一汁一菜都会主張されたときこれまでとつくに一汁一菜ましてゐた農村人のなかではさうしたスローガンをつたさうだがそれはくのいつたいどの国民層して食卓質素にせよといふことを要求してゐるのかはつきりしないそれでは都会人食卓はそんなに贅沢かといふと問題なのである都会でも一汁一菜などを実行しようものならんでしまはなければならない何故なら前述のやうに乗合自動車にのるにもへしひの精神的肉体的消費があり交通地獄都会交叉点五個所るときはいかに純粋都会生活者でも神経使非常なものなのであるただそれをはつきりとじてゐないだけなのである地方から東京てきたはそれを経験したことであるとはれるが田舎から東京いた途端精神昂奮があり一種軽微神経衰弱状態るものなのである

 

국민생활의 無益排除라고 하는 말을 부르짖고 있는데 그러나 이것은 都會人에게 그것을 요구할 수는 없으며 地方人에게는 또 특히 無益한것만은 아닐것이며 <국 한그릇,반찬 한가지>를 도회에서 주장 되었을 때 지금까지 시골에서 국 한그릇,반찬 한가지로 지내고 있던 農村사람들 중에서는  저러한 slogan을 코웃음 치는 듯 하지만,그것은 천만의 말씀으로 도대체 어느 국민층에 대하여 식탁 위를 간소하게 하자고 하는것을 요구하고 있는지 확실하지 않으며 그렇다면 都會人의 식탁 위에는 그렇게 사치스러운가 하면 문제인것이며 都會에서도 국 한그릇,반찬 한가지 등을 실행 하려고 한다면 죽어버리지 않으면 안되며 왜냐하면 전술한 바와 같이 승합 자동차를 타는것도 밀고 댕기고 하는 정신적 육체적인 소비가 있으며 교통지옥의 都會의 교차점을 다섯군데나 지나갈 때는 아무리 순수한 都會생활자라도 신경이 쓰이는것은 대단한 것이며 단지 그것을 확실하게 느끼지 않고 있을 뿐이고 지방에서 동경으로 나온 사람은 그것을 경험했을것으로 생각 되지만 시골에서 동경에 도착한 순간에 정신의 흥분이 생겨 일종의 경미한 신경쇠약 상태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だから都会人日常生活食糧にしても地方人三倍栄養必要とされてゐてそしてさつぱり壮健になれないでゐるのである砂糖欠乏したときの状態これは地方人家庭砂糖がないといふ状態心理的にはまつたくふとはれる平素から煮物砂糖使はれてゐるといふことは単純理由ではない都会生活疲労度合しく都会人いものを要求することはんど病的であるコオヒイ汁粉屋東京馬鹿々々しくいといふこともその事情るものがある女学生中学生はお汁粉屋そして大学生はコオヒイ労働者商店員はミルクホールにそしてサラリーマンは勤務がひけてもまつすぐに家庭にはらないそれはこの人達不道徳だからではなく一日生活心労がさうさせるのであるサラリーマン朋輩とおでん一杯のんでからるのであるこれらの階級以上々はどういう方法都会心労してゐるのからない都会一汁一菜不可能理由都会健康つにはんでもふといふ雑食主義でなければならない食料だけの問題ではない日曜祭日休日になると東京のサラリーマンはどんどんと郊外にピクニックにでかけるそしてそれがきな享楽的印象へるしかし事実なる一週間にたつた一日だけ恰度金魚れたをとりかへてふことをつてゐるやうに休日るのをつてゐるそして自然清澄郊外空気金魚のやうにパクパクとひにかけるのであるへてみれば非常惨憺たるものなのである[#「ママ注記変下東京して地方とその労苦にしてゐないのではなくその労苦しいただ苦労姿格好なるだけである

 

 

따라서 都會人의 일상생활의 식량에 있어서도 地方人의 세배의 영양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그리고 산뜻하게 건강하게 되지 않는것이고 사탕이 결핍했을 때의 상태도 이것은 地方人  가정에서 사탕이 없다고 하는 상태와 심리적으로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되며 평소부터 요리에 사탕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하는것은 단순한 이유만은 아니며 도회생활의 피로의 상태가 심하고 都會人이 단 것을 요구하는 것은 거의 병적일 정도이고 커피 가게나 빵집이 바보처럼 많다고 하는 것도 그 사이의 사정을 말하는 것이며 여학생,중학생은 빵집으로 그리고 대학생은 커피 가게로 노동자,상점원은 milk-hall로 그리고 샐러리맨은 근무가 끝나도 바로 가정에는 돌아가지 않으니 그것은 이 사람들이 부도덕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루 생활의 心勞가 그렇게 만든 것이고 샐러리맨들은 친구들과 오뎅집에서 한잔을 마시고 나서 돌아가는 것이며 이러한 계급의 이상과 같은 사람들은 어떠한 방법으로 도회의 心勞를 치유하고 있을지 나는 모르며 도회의 국 하나 반찬 한가지가 불가능한 이유는 도회에서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무거나 먹는다고 하는 잡식주의가 아니면 안되며 식량만의 문제만은 아니고 日曜祭日의 휴일이 되면 동경의 샐러리맨은 북적대고 교외로 소풍을 나가며 그리고 그것이 놀기를 좋아하는 향락적인 인상을 주나 사실은 다르고 일주일에 단 하루만 마치 금붕어가 더러워진 어항 물을 갈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휴일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으며 생각해 보면 대단히 참담한 것으로 時變하의 동경은 결코 지방과 그 노고를 함께 하고 있는것이 아니라 그 노고는 같으나 단 노고의 모습 정도가 다를 뿐이다.

 

 

れて (하여)

 

小熊秀雄(오쿠마 히데오)

 

詩論といふまとまつた論評形式をとることはにとつては興味がわかないその理由いてはよりも一般読者所謂詩壇人よくわかつてゐるやうに所謂日本詩壇詩論などといはれてゐる評論形式むやうな独断的文章であること民衆一般的生活にはのかゝはりもない文章であることは衆知事実であるよりも自分することは自由形式のそれである詩論かなければならない立場つたとしたならそれは相手があつて論争をするであらうこゝでは詩論ではないれてである

 

詩論이라고 하는 명확한 論評의 형식을 취하는것은 지금의 나에 있어서는 전혀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그 이유에 있어서는 나보다도 일반 독자나 소위 詩壇人쪽이 잘 알고 있을것으로 생각한다. 소위 일본의 詩壇에서<詩論>등이라 말해지고 있는 評論형식이 모래를 씹는듯한 독단적인 문장이라는 것, 민중의 일반적인 생활에서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문장인것은 衆知의 사실이며 무엇보다도 자신이 원하는 것은 <자유로운 형식> 그것이다.만일 나는<詩論>을 쓰지 않으면 안되는 입장에 이른다고 한다면 그것은 상대가 있어서 논쟁을 할 때일것이며 여기서는 詩論은 아닌 <하여>이다.

 

 現在日本のありさまは政治的方面経済的方面近年まれな圧縮された状態にをかれてゐるこの圧縮された状態といふものはその物質的根拠すまでもなくつまりどうしてがかうきつめた状態にをかれてゐるだらうかと数字統計的立場から調べるまでもなく物質的根拠相対的位置にある精神的根拠立場からへてみるだけでも時代現象感得できるいままたをつくるといふ精神状態きつめた圧縮的世間状態とはじである

 

현재의 일본 모습은 정치적인 방면도 경제적 방면도 近年에 드물게 압축된 상태에 놓여 있으며 이 <壓縮>된 상태라 하는것은 그 물질적 근거를 찾을것도 없이 즉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쑤셔 넣은 상태에 놓여 있을수가 있는가 하고 수학,통계적인 입장에서 조사할 것도 없이 물질적 근거와 상대적 위치에 있는 정신적 근거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것 만으로도 시대의 현상은 느낄수가 있으며 지금 를 논하고 또 를 짓는다고 하는 정신상태와 쑤셔 넣은 압축적인 세상의 상태와는 전적으로 동일하다.

 

したがつて一人詩人半欠けの詩人日本存在しなくても事実んてうぢやうぢやとることよるものがなければしむものはゐない詩人がこのにをらなくても、「現実するはりつぱに存在するからである毎日新聞られた紙面なるべく沢山事実るといふ意味新聞記者報道文章極限的かく圧縮的いてゐる一方もろもろの現実出来事のうちからニュース価値といふ基準けて掲載する事件選択しなければならないもかも無選択新聞にはのせられないこの選択れは社会的抽象性としてうつかりすときは変槌もなくこれに多少批判的へるときは平凡える新聞記事意外文章背後複雑真実たへてゐることとがいであらうこゝでも新聞材料選択その抽象方法新聞面圧縮的緊張感のみなぎつたものとして毎日新聞する興味くない下手詩人かしい時間新聞むことにふりむけてもして民衆はないのであるその意味では日本現在大部分詩人思想低劣度合新聞社雑報記者にもることは勿論新聞社給仕君感覚的動きにもばないのである

 

따라서 한사람의 詩人도 반이 모자라는 詩人도 일본에 존재하지 않아도 누구도 경멸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애석해 하지도 않으며 詩人이 이 세상에 없어도<현실이라고 칭하는 >는 훌륭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매일의 신문은 한정된 지면에 될수 있는한 많은 사실을 담는다고 하는 의미로 신문기자는 보도의 문장을 극한적으로 짧게 압축적으로 쓰고 있으며 한편 여러 가지 현실의 사건 속에서 뉴스 가치라고 하는 기준을 설정하여 게재하는 사건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어쨋거나 無選擇으로 신문에는 올릴수가 없다. 이 선택의 출현은 사회적인 추상성으로서 멍하니 읽어갈 때는 아무런 특별한 도 없이 여기에 다소의 비판적인 눈을 가할 때는 평범하게 보이는 신문기사가 의외로 문장의 배후에 복잡한 진실을 갖추고 있다고 하는것이 많을 것이다. 여기서도 신문재료의 선택 그 추상의 방법은 신문명을 압축적인 긴장감이 넘치는 것으로서 매일의 신문에 대한 흥미는 적지 않게 서툰 詩人의 바보스런 를 읽는 시간을 신문을 읽는것에 관심을 가져도 결코 민중의 후회는 아닌것이다. 그 의미로는 일본의 현재의 대부분의 시인의 사상의 열등한 정도는 신문사의 雜報기자에도 못미치는 것은 물론 신문사의 급사의 감각적 활동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しかし詩人反駁してかういふであらう詩人雑報記者いつしよにするのはすぎる詩人には雑報記者けてゐる所有してゐない高貴精神がある高邁理想がある――」さういふ意味では世間流布されてゐる現在詩人といふものがどれをんでみても、「高貴さうな高邁らしいいことであらう

 

그러나 어는 시인은 반박하여 이렇게 말을 할것으로 <우리들 시인과 雜報기자와 함께 하는것은 너무 가혹하다.詩人에게는 雜報기자에 빠져 있는 소유하고 있지 않은 고귀한 정신이 있다.고매한 이상이 있다___>하고,그러한 의미로는 세상에 유포하고 있는 현재의 詩人의 작품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을 읽어 보아도 <高貴>한듯한 <高邁>다운 가 많을 것이다.

 

 しこゝでかう断言できる高貴でなくても高邁精神をもたなくても結構詩といふものは出来るものだと――、そのことは私自身証明してゐるからかだ高邁でなくてもいゝから第一流雑報記者のやうにありたいつてゐるはかう文章きすゝめてくるとへがくの詩人達へとますますきのある意見べる結果になることを予感する事実そんなになるであらうそのことははしい論争でないかぎりメタン瓦斯的詩壇雰囲気接近することを極度けてゐる理由つには詩論詩論とはどこにも接触点がないことがりにはつきりしてゐるからである世間ではよく以前愛読者であつた近頃はどうもわからないつてゐるのをにすることがあるこののファンはホイットマンを限度にしてそれ以来はどうも難解になつてきて理解できなくなつてゐるのである

 

나는 그러나 여기서 이렇게 단언 할 수가 있다.고귀하지 않아도 고매한 정신을 갖지 않아도 훌륭한 라고 하는 것은 생길수 있는것이다!하고__그것은 나 자신이 증명하고 있기에 확실하다.나는 고매하지 않아도 좋으니 一流雜報기자처럼 있고싶을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나는 이렇게 문장을 계속 써오면 나의 생각이 많은 시인들의 생각과 점점 차이가 나는 의견을 말하는 결과가 될것을 예감한다. 사실 그러한 형태가 될것이다.그것은 성가시고 논쟁이 아닌 한 methane gas詩壇의 분위기에 접근하는것을 극도로 피하고 있는 이유의 하나로는 나의 詩論과 다른 사람의 詩論과는 어느 곳에도

접촉점이 없는것이 너무나도 확실하게 있기 때문이다.세상에서는 흔히 이전은 의 애독자였던 사람이 <요즈음의 는 도무지 모르겠어!>라고 말하고 있는것을 귀에 접한 일이 있다.이 옛날의 fanWhitman 을 한도로 하여 그 이래의 는 너무 난해해졌으며 이해할 수가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その当時日本詩人のお手本ホイットマンであつたりはその形式平易自然美のとりいれにをいてまだこののファンは日本詩人にも眩惑されてゐたのであるそれ以来社会状態速度へた変化仕方理由になるがでは無選択難船のやうに外国詩人あれこれとれるものにしがみついた状態であつたいことにはそのしがみついた外国詩人フランス英国といつた形式主義的心理的享楽度合濃度詩人のみであつたため日本詩人民衆提供したくわけのわからぬ詩語たされたのみで民衆からの離散への失望とともにくなつてつたのである

 

그 당시의 일본의 詩人의 자습서가 Whitman이었던 한은 그 형식의 平易와 알기 쉬움,自然美의 수확에 있어서 아지 이 옛날의 fan은 일본의 시인 작품에도 현혹되고 있는것이다. 그 이래는 사회상태의 속도를 가한 변화의 양상에도 이유가 되지만 다른 면으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難船의 사람처럼 외국의 詩人을 이것 저것 손에 접하는 것에 매달린 상태였다.좋지 않은것은 그 매달린 外國詩人은 프랑스 영국이라고 하는 형식주의적인 심리적 향락의 배합의 濃度詩人뿐이었기 때문에 일본의 詩人의 민중에게 제공한 는 전혀 근거를 알지 못하는 詩語로 가득한 뿐으로 민중의 에서 離散하여 에의 실망은 세월과 함께 깊어져 간 것이다.

 

近頃はどうもわからない――」といふはまだする執着があるさうしたをした何時雑誌からみしてもよくもかしくもなく――はれる愚劣内容露呈してゐるはまた精神整理などを心掛けないふしだらな混乱などをませられるためこののファンはしまひには、「近頃はどうもわからないといふ近頃する感想からをしだいに変化させてわからないよう!」ふやうになつてしまふのである読者としての自分時代遅れかどうかして近来がわからないのではないか自分らないやうなしい詩形式理論があつてそれにづいてあのやうな難解詩人たちがつくるのではないか理解できないのは自分があるのではないか! といつた引取をして、「はわからない!」といふやうにしてしまふのである現代詩人その態度不面目さの一般読者所謂民衆から切断してゐるりでなくかゝる形式主義詩人民衆するものをかなりにコジらしてゐるのである

 

<요즈음의 시는 도무지 알수가 없어!__>라고 하는 사람은 아직 에 대한 집착이 있는 분으로 그러한 말을 한 사람도 언제고 잡지 속에서 를 끄집어 읽어도 퍽이나 부끄럼움도 없이__라고 생각되는 愚劣한 내용을 나타내고 있는 혹은 또 전혀 정신의 정리등을 마음에 두지 않은 조잡한 昏亂등을 읽게 되기 때문에 이 옛날의 fan은 마지막에는 <요즈음의 시는 도무지 알수가 없어!>라고 말하며 요즈음의 에 대한 감상에서 표현을 점차로 변화시켜<나는 는 알지 않을거야!>라고 말하는 듯이 되버린 것이다.독자로서의 그는 자신이 시대에 떨어진건지 어떤지 근래의 시를 모르는것은

아닌가?뭔가 자신이 알지 모르는 듯한 새로운 형식의 이론이 있어서 거기에 근거하여 저와 같은 난해한 詩人들이 만들고 있는것은 아닌가?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 쪽에 책임이 있는것은 아닌가? 라고 하는 후퇴를 하여 <나는 는 몰라!>라고 하는듯하게 되버린 것이다. 현대의 詩人그 태도의 수치심 때문에 일반독자 소위 민중을 에서 절단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이러한 형식주의 詩人은 민중의 마음의 에 대한 것을 대단히 곤란하게 하고 있는것이다.

 

 がわからない読者にはめもないのであるわからない平然発表して読者から引離してゐるのは詩人自身なのであるそれの証明ができるといふをつくる人間一般読者しくさうした種類わからないのであるからしてるべしであるたゞ一般読者るところは門外漢である読者のやうに近来して近頃はどうもわからないはわからない!」といつた感想べるにとゞめてをくことが出来ない立場にある読者のやうに精神的過程辿つたこともあるしかし実際にこれらの形式主義詩人意見対立状態詩作経験をつづけてゐるうちにはこれらの難解人生虚偽であることがはつきりして。「らないやうなそんなものはではない!」とはつきりと断罪位置はある一般読者つてののファンもはわからない!」などと責任背負込みをしないでのやうにわからないやうなでないといふ突放をしてしいものである

 

를 모르는 독자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는것이다. 알지 못하는 를 태연하게 발표하여 독자를 에서 더욱 멀어지게 하는것은 詩人 자신인것이다. 그것의 증명은 내가 할수 있어!내가!라고 하는 를 만드는 인간이 일반독자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종류의 <몰라!>이기에 미루어 알아야만 한다. 단 내가 일반 독자와 다른 점은 의 문외한인 독자처럼 근래의 에 대하여 <요즈음의 시는 도무지 알수가 없어!>혹은<나는 는 몰라!>라고 하는 감상을 말함에 머물수가 없는 입장에 있다.나는 독자처럼 위와 같은 정신적 과정도 거친적도 있다.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형식주의 詩人과 의견이 대립상태로 詩作의 경험을 계속하고 있는 중에는 이러한 난해한 는 인생의 虛僞라고 하는 것이 확실히 온다.<알지 모를듯한 그런 것은 가 아니야!>라고 확실하게 斷罪를 내리는 위치에 지금은 있으며 일반 독자도 예정의 fan<나는 는 몰라!>등으로 책임을 지지 않고 나처럼 알지 모를듯한 가 아니다라고 하여 뿌리치고 싶은 것이다.

 

かわからないがモヤモヤとしたものがあるといふことがだといふそれを読者しでもめることにつてこの詩人懸命そのモヤモヤを製造しようと画策するこのモヤモヤのだくみはそれがくことがあるのであるモヤモヤの支持者である読者その作者である詩人くはその精神的状態はジレッタントがいのである現在のやうにその難解きづまるといふことはどういふ理由原因をもつてゐるだらう難解のその反対にある平易といふことは世界ではどういふことになつてゐるだらう々は現実難解なものだといふことを否認はしてゐないのであるしかしその難解現実平易にわかりやすく表現する自由はまたのものであるその情緒的手段いては最高抒情詩とは諷刺詩以外にはない!」主張した途端幾人かの詩人ぶるひしてとびあがつた。「諷刺詩抒情詩だなんてろしい恥知らずだ!」非難される諷刺といふものが感情的表出であるといふ意味その詩人にとつての詩情であることは否定することが出来ないであるある諷刺手段であるとみて感情ではないといふ抒情詩などといふ純粋なものに手段などといふならしい物指しをあてるなどといふことはだといふこれからの詩壇きだひだといふ問題ひようによつてはまないであらうしましてはいけないであらう

 

뭔지는 모르나 애매한것이 있다고 하는 것이 다 라고 하는 사고방식은 그것을 독자가 조금이라도 인정해줌에 따라서 이러한 종류의 詩人은 열심히 그 애매한것을 제조하려고 劃策하며 이 애매한 트릭은 그것이 묘하게도 효과가 있는 것이다. 애매함의 지지자인 독자는 그 작자인 詩人과 함께 많게는 그 정신적 상태는 dilettante 가 많은 것이다.는 현재처럼 그 난해함 때문에 停滯한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이유,원인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난해 그 반대측에 있는 平易라고 하는 것은 의 세계에서는 어떤 것으로 되고 있는것일까?우리들은 현실이 난해한것이라고 하는 것을 부인해서는 안되는 것이다.그러나 그 난해한 현실을 평이하게 알기 쉽게 표현하는 자유는 또 나의 것이다.게다가 정서적 수단에 있어서는 <최고의 抒情詩라는 것은 諷刺詩 이외에는 없다!>라고 내가 주장한 순간에 몇몇 詩人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펄쩍 뛸것은 틀림 없다.<풍자시가 서정시라니!끔찍이도 부끄럼을 모르는군!>하고 나는 비난을 받는다.풍자라고 하는 것이 감정적 표출이라고 하는 의미로 그 詩人에 있어서의 詩情인 것은 부정할 수가 없는것이다. 어느 사람은 풍자를 수단 뿐이며 감정은 아니다 라고 하며 서정시 등이라고 하는 순수한 것에 수단등이라고 하는 지저분한 尺度를 댄다고 하는 것은 안된다 라고 말한다.이제부터의 詩壇은 좋다 싫다 하는 문제로 취급하여서는 해결이 되지 않을 듯하며 해결해서는 안될것이다.

 

 この人達のいふ抒情詩手段なしにつくられてゐるといふ事実めようしかし助太刀がなければこの才能なしの抒情詩人一篇をつくりあげることができるがないその助太刀インスピレィションとか偶然性とかいふものである霊感みだすやうであれば天下詩聖であるべきはずであるしかし彼等がぐつとげてきただけでそれをインスピレィションにれてどうやら一篇抒情詩をつくりあげる詩作ると黄色あわてゝ胃散ばるのである一切感傷的世界をもつて抒情詩であるといふ詩人さうしたへかられて諷刺詩にすゝむなどといふことはへられない何故ならこの詩人達諷刺詩世界にまで自分のファンであるセンチメンタルなおさんの読者きつれて家移りするほどの自信勇気ももたないからである詩情といふ甘味なものはすべての詩人愛好物である諷刺詩人はこのいもの既存する抒情詩詩的材料代表的なもの詩人――あゝ世間でいはれるところのものにしてどのやうな態度をとるであらうか諷刺詩抒情詩だといふ意味のわからせつとしてべれば既成抒情詩人をくすぐる詩的材料としての太陽などの材料そつくりそのまゝ素材として頂戴できるといふことしかもくの既成詩人五種類位よりけることができないのに風刺詩としての抒情詩幾十種でも無限をしてその詩人として詩人との親和状態いて現実的真実詩句として証明できるのである

 

이러한 사람들이 말하는 서정시가 전혀 수단이 없이 만들어졌다고 하는 사실을 나는 인정한다 하여도 뭔가 지원이 없으면 이러한 재능이 없는 서정시인이 한편의 를 완성할 수가 없는것이다.그 지원은 inspiration이라던가 우연성이라던가 하는 것이다.진실된 靈感을 만들려고 한다면 천하의 詩聖이어야만 한다.그러나 그들은 가슴이 울컥 벅차온것 뿐이며 그것을 inspiration으로 짜깁기 하여 어떻게 하던 한편의 抒情詩를 만들어 낸다. 詩作이 끝나면 노란 물을 토하고 황급히 胃散을 퍼뜨리는 것이다.일체의 감상적인 세계를 가지고 서정시라고 하는 詩人은 그러한 생각에서 떠나서 풍자시로 진전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 되어지지 않는다.왜냐하면 이러한 詩人들은 풍자시의 세계까지 자신의 fansentimental한 아가씨 독자들을 데리고 이사를 할 정도의 자신도 용기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詩情이라고 하는 감미로운 것은 모든 詩人愛好物 이다.풍자시인은 이 단것 기존하는 서정시의 詩的재료의 대표적인것의<詩人___!!별이냐!제비꽃이냐!>라고 세상에서 말하고 있는것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것일까?풍자시가 서정시이다 라고 하는 의미를 알려주는 방법의 하나로서 말한다면 旣成서정시인이 여자아이를 간지럼 태우는 詩的소재 로서의 별이나 제비꽃 혹은 달,태양 등의 재료는 있는 그대로의 소재로서 받아들일수 있다는 것으로 게다가 많은 旣成詩人이 달을 노래한 방법을 정성껏 다섯가지 정도에서 나누어 노래할수가 없는데도 풍자시로서의 서정시는 수십종이라도 무한한 노래 방법을 취하여 그 詩人으로서 달과 詩人과의 친화상태에 있어서 현실적 진실을 詩句로서 증명할수가 있는 것이다.

 

 日本大衆されてゐるといふことの最大理由民衆日常語をもつて詩人がそれを詩句とすることをあまりに軽蔑してゐるからである抒情詩諷刺詩到達してめてその詩情といふ人間的感情社会的機能すことができるものであるといふ理論よりも現在詩人如何民衆言葉自己言葉とすることがむづかしいことであるかといふことを経験すべきであらう現実かしくかしくはせぶりにふことは何倍ものしみがあることをさとるそれといふのも言葉性質選択にも庶民的位置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であるそのことがへられるかどうかが問題となる現状見透しは不可能とみていゝ何故なら現在詩人のあまりにりきつた詩語問題からもなるべくけようけようとしてゐるグウタラな態度をもつてしては到底その素材いて庶民的――形式いて諷刺詩彼等諷刺そこなつてナンセンスなくものも近頃みかけるやうであるがまた言葉常識的ではなく高度普遍的言語として一定位置にをいてがさずその目的つてしまふなどといふ手際芸当彼等には出来さうもない観念をもてあそぶことにがしくて自分使つてゐる言語細部にわたつてのてに執念ぶかい検討へるといふことをれてゐる

 

일본의 가 대중과 떨어져 있다고 하는 최대의 이유는 민중의 일상어를 가지고 詩人이 그것을 詩句로 하는 것을 너무나도 경멸하고 있기 때문이다.抒情詩諷刺詩에 도달하여 비로서 그 詩情이라고 하는 인간적 감정의 사회적 기능을 다 할 수가 있는것이라고 하는 이론보다도 전에 현재의 시인이 어떻게 민중의 언어를 자신의 의 언어로 하는 것이 어렵다고 하는것일까 하는 것을 우선 경험해야 할것이다.현실을 어렵게 어렵게 생각나는대로 노래하는 것은 수배의 고충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것이며 그러한 것도 언어의 성질의 선택에도 전적으로 서민적 위치에 서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것을 감수 할 수가 있을지 어떤지가 우선 문제가 된다.그러나 현상의 透視는 우선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으며 왜냐 하면 현재의 시인은 의 너무나도 확실한 詩語의 문제에서도 될수 있는한 피하자 피하자 하고 있다.맥빠진 태도를 가지고 있어서는 도저히 그 재료에 있어서 서민적으로__형식에 있어서 풍자시에(그들은 諷刺에 상처를 입혀서 nonsense으로 돼지 엉덩이를 찌르는 것도 요즈음 발견한 듯 하지만)의 언어를 상식적이 아니라 고도한 보편적인 언어로서 일정한 위치를 두고 흔들리지 않게 그 노래하는 목적을 노래해 버린다고 하는 솜씨가 좋은 재주는 그들에게는 될것 같지도 않다.관념을 가지고 노는것에 바빠서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의 언어의 세부에 걸쳐서의 조립에 집념을 깊이 하여 검토를 가한다고 하는 것을 잊고 있다.

 

詩人はその詩語へられた工夫らしくてもてはやされてゐるしかしはこの形式主義者詩語へる努力といふのはその言葉内包してゐるものをふためにめてゐるそしてその加工言葉実質つてしまつたといふ意味かしらモヤモヤとした風韻なのであるしかし々の立場くその反対である現実流布されてゐる言葉する疑問へるそして民衆語選択勿論言葉そのものの物質的基礎吟味するのである歴史的物質としての言語として々の採択する詩語としてむのであるもしその言葉封建的要素がある場合にもして言葉のアカデミズムとして排除しないその言葉解体にそれを組織するさういふことは可能かどうかといふひはもつ必要はない何故ならから詩人とは言葉発明者といはれてゐるその理由現在いても詩人言葉する態度いて現実発見される言葉発見発明といふ意味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だらう

 

어느 詩人은 그 언어에 가해진 工夫가 진기하여 크게 자랑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종류의 형식주의자가 언어에 가하는 노력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언어가 내포하고 있는것을 잃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그리고 그 加功은 언어의 실질을 잃어 버렸다고 하는 의미로 뭔가 애매한 風韻인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입장은 전혀 그 반대이다.현실에 유포되고 있는 언어에 대한 의문도 가해진다.그리고 민중어의 선택은 물론 언어 그것의 물질적 기초를 음미하는 것이다.역사적 물질로서의 언어로서 우리들이 채택하는 언어로서 선택하는 것이다. 만일 그 언어가 봉건적 요소가 있는 경우에도 결코 나는 언어의 academism으로서 排除하지 않는다.그 언어를 해체하여 더욱이 그것을 조직한다. 그러한 것은 가능할지 어쩐지 하는 의문은 가질 필요는 없다.왜냐하면 옛날부터 詩人이라 함은<언어의 발명자>이라고 하는 그 이유는 현재에 있어서도 詩人의 언어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현실의 발견으로 칭해지는 언어의 발견발명이라고 하는 의미로 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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