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技巧の技巧
小熊秀雄(오쿠마 히데오) 1926年
何時の時代でも文学的作物の評価は自由であつた筈で、もつとも作品の評価に就いての可否はいろいろあつた。現在でも決して解決づけられたものではないとは思ふ。
宮本君の言はれるやうに『他人の作は自分にわからず、自分の作は他人に判らず』といふ調子の作品を判定する第三者を全然認めないといふ態度は、一昔も二昔もの文学の幼稚園児の言葉であつて、現在では文芸批評といふものは、作品に現れた思想や文体の性質に就いて研究し最善なる標準を指示する目的の下に、立派に存在する一の科学である。
いま更こんなことを説明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は世話の焼ける話であるが、
次に詩に於ける技巧は、往々にして純真さを失ひ個性を傷つける場合が少くないからと言ふ理由で技巧などゝいふことはいかなる芸術にも末の末の問題で詩はあくまで平明でなければならぬとの迷論であつたが、私達象徴派詩人に言はせれば、輝く技巧こそ『純真な叫び』と『個性の強調』であると信じてゐるもので、この点『圧搾された感情』の下にの『圧搾された言葉』の詩人であり、宮本君の如き所謂無技巧主義詩人輩のごときおしやべり[#「おしやべり」に傍点]ではない。
現在の日本詩壇で無技巧主義として成功してゐる詩人は千家元麿氏唯一人より無いと言つても決して過言ではないと思ふ他は『素直さ』や『純真さ』を売り物にする『無技巧の技巧』詩人多く『退屈なる述懐』『あやまれる自由詩』に溺れてゐるものである。
この点で詩の大道を歩み絶えず私を注目させる中堅作家、中西悟堂、金子光晴の二詩人であつて、その技巧けんらん[#「けんらん」に傍点]とした唐草模様そしてその詩のあくまで健康体であることは大いに頼もしい極みである。
『象徴詩とは何か』と今更長論文でもあるまいから遠慮をするが、宮本君の『詩壇革新の第一線』なる詩論は文学幼稚園児の詩の常識論を一歩も出ないもので唯いたづらに郷土の詩人を薯や南瓜扱ひにして大見栄を切つたばかりで、少くとも詩論と名がつき其他何によらず自分の書いたものに位に責任を持たなければ駄目だ安達君の反駁に対して逃げを張るやうではすこぶる情ない。
北国人的重厚さの少いことを残念に思ふもので『小熊を甘く見た』と同様他人もさう軽々と見るのは悪い癖である『君の出やうによつては僕は毒にもなれば薬にもなる』といふ宮本君からの手紙の文面を私から今度宮本君にそのまま返上するのである。
現在の私は午後に書けば、翌日すぐ発表の出来る自由な立場にある、それだけに私はその自由な発表機関の悪用をしたくないと常々心掛けてゐる。したがつてあつちこつちに借財が溜つて書き出せばつい長くなる宮本君其他への進言はこの程度にしてをいて、もつと穏かな親しみ深い話題に恵まれたい。
無技巧의 技巧
어느 時代에도 文學的作物의 評價는 自由이었을것으로 더우기 作品의 評價에 대한 可否는 여러가지 있었다.現在에도 결코 解決되어진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宮本(미야모또)君이 말씀하시듯이<他人의 作은 자신이 모르며 자신의 作은 他人이 모른다>하고 하는 語調의 作品을 判定하는 第三者를 전연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는 태도는 옛날에도 아주 먼 옛날의 文學의 幼稚園 아이의 언어이며 현재에서는 文藝批評이라고 하는 것은 作品에 나타난 思想이나 文體의 성질에 대하여 연구하고 最善인 標準을 指示하는 목적下에 훌륭하게 존재하는 하나의 科學이다.
새삼스럽게 이런것을 설명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함은 성가신 말이지만
다음에 詩에 대한 技巧는 往往히 純眞함을 잃고 個性을 상처 입히는 경우가 적지 않기때문이라고 하는 이유로 技巧등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예술에도 가장 末端의 問題로 詩는 어디까지나 平明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迷論이었지만,우리들 象徵派詩人의 말을 들어 보면 번쩍이는 技巧야말로<純眞한 절규>와 <個性의 强調>라고 믿고 있는것으로 이 點<壓搾된 感情>의 下에서의<壓搾된 언어>의 詩人이며 宮本君처럼 所謂 無技巧主義詩人들 처럼 떠들어대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日本詩壇에서 無技巧主義로서 成功하고 있는 詩人은 千家元磨(센게 모또마로)氏 오직 한사람 이외는 없다고 말해도 過言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他는<素直함>이나<純眞함>을 賣物로 하는<無技巧의 技巧>詩人이 많고<따분한 述悔><잘못된 自由詩>에 빠져 있는것이다.
이점에서 詩의 大道를 끊임 없이 걷고 있어 나를 注目시키는 中堅作家,中西悟堂(나까니시 고도오),金子光晴(카네꼬 미쯔하루)의 두 詩人이며 그 技巧絢爛한 唐草模樣 그리고 그 詩의 어디까지나 健康體인것은 크게 바람직함의 極이다.
<象徵詩는 무엇인가?>하면 새삼스레 長論文도 아니니까 遠慮를 하지만 宮本君의<詩壇革新의 第一線>인 詩論은 文學幼稚園 아이의 詩의 常識論을 한발자욱도 나가지 않은것으로 오직 장난으로 鄕士의 詩人을 감자나 호박 취급으로 하여 큰 虛飾을 잘랐을 뿐으로 적어도 詩論이라 이름이 붙는 기타 어느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쓴것에 걸맞게 책임을 지니지 않으면 안된다고 安達君의 反駁에 대하여 도망갈 궁리를 하는듯 해서는 상당히 情이 없다.
北國人의 重厚함이 적은것을 유감으로 생각하는 것으로<小熊을 만만하게 보았다!>와 마찬가지로 他人도 그렇게 가볍게 보는것은 나쁜 습관이며<자네가 나가는 여하에 따라서는 나는 毒도 되며 藥도 된다!>하고 하는 宮本君으로부터의 편지의 文面을 내게서 지금 宮本君에게 그데로 되돌려 보낸것이다.
현재의 나는 午後에 쓰면 다음날 바로 발표할수가 있는 自由로운 입장에 있으며 그만큼 나는 그 自由로운 발표機關의 惡用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항상 마음 먹고 있다.따라서 여기저기에 借財가 고여서 써내면 결국 길게 되는 宮本君 기타에의 進言은 이정도로 해두고 좀더 온화하고 친밀하며 깊이가 있는 話題가 주어졌으면 한다.
北国人的重厚さ
私が北国人を讃へる理由は、風土に磨かれた四肢と感情とである。
――北海道の人間は薄気味が悪いよ。
とは私が上京当時ある男が私に言つた言葉であるが、私は彼の言葉を是認した『北国人らしさ』こそ私の好ましく誇りとするものである、風土は如何にその北国に棲むものを重くるしくしたか、そしてその『重厚さ』こそ仕事に対する粘着かを意味してゐる。
私は少しく百姓をしたことがあるが、百姓位憂鬱なものはなかつた。殊に私の与へられた仕事といふものは『毎年毎年掘り返して耕作される土地』ではなくて、斧鉞のかつていれたことのない未墾地なのであつた。
내가 北国人을 讚揚하는 이유는 風土에 硏磨된 四肢와 感情이다.
___北海道의人間은 웬지 기분이 나빠요!
라고 함은 내가 上京當時 어느 남자가 말한 말이지만 나는 그의 말을 是認한<北国人다움>이야말로 내가 기꺼이 자랑으로 하는 것이며 風土는 어떻게 그 北國에 棲息하는 것을 답답해 했는가 그리고 그 <重厚함>이야말로 일에 대한 粘着인가를 의미하고 있다.
나는 조금은 農夫를 한적이 있지만 農夫만큼 憂鬱한것은 없었다.특히 내게 주어진 일이라고 하는 것은
<每年 每年 파서 뒤집고 耕作되는 土地>는 아니며 斧鉞이 베어 들어간 적이 없는 未墾地인 것이었다.
まず鎌で、殆ど身長程もある雑草、ドングイ、なゝかまど、小松ふき、そして蛇の坐とやら言はれる奇怪な陶器製のやうな植物などを刈とり、それから鎌の手に負へない程な樹木を、ナタで切り、ナタで手に負へないやうな樹を鋸でごしごしやつた。
私はアンリー・ルッソオの『原始林』といふ絵を見れば、私は何時もふつと樺太の、斧鉞をいれない樹林、そしてそこの生活を想ひだす。
やつとの思ひで樹や草をはらつて、ホッと吐息をし傍の木の切り株に腰をかけた。
私はだいたい当時この百姓の仕事を嫌つてゐた。
우선 낫으로 거의 내키 정도나 되는 雜草,도토리,마가목,小松머위,그리고 蛇坐라던가 하는 奇怪한 陶器製와 같은 植物등을 베고 그리고는 낫에 상처입지 않을 정도의 樹木을 도끼로 자르고 도끼에 상처입지
않을듯한 나무를 톱으로 북~북~ 해댔다.
나는 앙리·루쏘의 <原始林>이라고 하는 그림을 보면 나는 언제나 문득 樺太(Sakhalin)의 斧鉞을 넣지
않은 樹林 그리고 그곳의 생활을 생각해 낸다.
가까스로 나무나 풀을 제거하고 후유~하고 한숨을 쉬며 옆의 나무 그루터기에 앉았다.
나는 대체로 당시 이 農夫의 일을 싫어하고 있었다.
『悪い病気』何時の間にか私の体内には、血脈には、永久救ひのない感情が巣をくひ始めてゐた。
『私は今。宮本吉次君の『詩壇革新の第一線』なる詩論にたいして一矢を射ようと心構へてゐるのであるが、私の過去の喜悦に満ちた百姓の生活の追憶は、つぎ/\と湧き、彼に対する反駁することのクダラナサをちよつと[#「ちよつと」に傍点]の間消滅させる』
私は樹木に腰かけ、その百姓服を風になびかせながら、私の少年は文学を憧れた。
この間若山牧水夫妻が来旭したあの遠くから見ると骸骨のやうな感じの顔、それほどに枯淡な親しみを覚えた牧水氏、その歓迎宴を我等の仲間が某旗亭で催したが、席上牧水氏の短冊を頂戴した。
今私の河岸に面した書斎を飾りなんべんも口吟するものはその一葉である。
<나쁜 병> 어느샌가 나의 體內에는 血脈에는 永久히 救援이 없는 感情이 둥지를 먹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宮本吉次君의 <詩壇革新의 第一線>인 詩論에 대하여 一矢을 쏘고자 마음 먹고 있는것이지만 나의 과거의 喜悅에 가득한 農夫의 생활의 追憶은 계속해서 끓어 오르고 그에 대한 反駁할것이 시시컬렁함을 잠깐 사이에 消滅시킨다>
나는 樹木에 앉아서 그 農夫옷을 바람에 나부끼게 하면서 나의 少年은 文學을 憧憬하였다.
요사이 若山牧水(와까야마 보꾸스이)夫妻가 来旭하였으며 저 멀리서 보면 骸骨과 같은 느낌의 얼굴,
그정도로 枯淡한 親近함을 느낀 牧水氏 그 歡迎宴을 우리들 동료가 某 요리집에서 開催하였지만 席上에서 牧水氏의 短冊을 받았다.
지금 나의 河岸에 面한 書齋를 장식하고 몇 번이나 口吟하는것은 그 一葉이다.
私はこの牧水氏の歌に接するとき、想ひは一瀉千里、はるかにダッタンの海を航海し、樺太の百姓時代に思ひいたる。
うす紅に葉はいちはやく萌えいでゝ咲かんとすなり山桜花。
樺太の深い谷間に、私は牧水氏の歌の心を感得する、ことにその谿間はふかく鬱蒼とし、種々の緑の樹に混つて、点綴されてゐた、『うす紅に葉』『咲かんとすなり山ざくら花』がいかに感傷に沈み、未知なる恋の世界の憧れに満ちてゐた少年の感情を激しく震へさせたことであつたか、
谿谷には、清いあまり水の深くない流れがあつた。
나는 이 牧水氏의 노래에 接할 때 생각은 一瀉千里,아득히 Tatar의 바다를 航海하고 Sakhalin의 農夫時代에 생각이 미친다.
불그스레한 잎은 빨리도 싹이 터서 활짝 핀 산벗나무
Sakhalin의 깊은 谷間에 나는 牧水氏의 노래의 마음을 感得하며 특히 그 谿間은 깊고 鬱蒼하며 種種의
녹색 나무에 섞여서 點綴되고 있으며 <불그스레한 잎> <활짝 핀 산벗나무>가 얼마나 感傷에 잠겨서
未知한 사랑의 世界의 憧憬에 넘쳐 있던 少年의 感情을 격렬하게 흔들어 놓았던가?
谿谷에는 맑은 나머지 물이 깊지 않은 흐름이 있었다.
瀬々走るやまめうぐひのうろくづの美くしき頃の山ざくら花。
つめたきは山ざくらの性(さが)にあるやらむながめ冷たき山ざくら花
の二首、私の書斎を飾る、『うす紅に』牧水氏の以上三首は大好きだ、樺太の谷の瀬にも、銀鱗ををどらすやまめうぐひ腹の赤い岩魚など棲み、やまめのうろくづの美くしい頃の山桜は冷たい感情やらいちめん
『それは桜のはなの酢えた匂ひの様に××いつもなやましい光を感じさせる××』と詩人萩原朔太郎氏の詩集『青猫』中の『憂鬱なる桜』を感じたりしたのであつた。
瀬瀬 달리는 山川魚 斑魚 물고기가 아름다운 시절의 산벗나무
차가움은 산벗나무의 天性에 있으며 쫒아 바라보는 차가운 산벗나무
의 二首,나의 書齋를 장식하고 <불그스레>牧水氏의 이상 三首는 아주 좋아하며 Sakhalin 계곡의 여울에도 은비늘을 튀는 山川魚 斑魚 배가 붉은 岩魚등이 棲息하고 山川魚 물고기가 아름다운 시절의 산벗나무는 차가운 感情이라면 一面
<그것은 벚꽃이 시큼한 냄새처럼 XX언제나 어지러운 빛을 느끼게 하는 XX>하고 詩人 萩原朔太郎
(하기와라 사꾸타로오)의 詩集 <靑苗>중의 <憂鬱한 벚나무>를 느끼거나 한것 이었다.
朝霧の中の牛
朝霧の中の牛
아침안개속의 소
私は千家元麿氏の詩を、日本詩壇に於ける唯一の無技巧主義詩人であると前回に述べたが、千家氏の詩風のやうに『すこぶる無造作な詩風』で詩情を存分に発表できるなら、こんな苦労のない容易なことはない、この点では私の平素羨望に堪へないと思つてゐるところだが、さて千家流の無技巧主義を、他の詩人が借用に及んだところで、さう/\簡単に成功するものではない。それは千家氏の詩が詩の技巧を超越した『人格的なもの』がまつ先に第三者を魅惑するのでその詩は『無条件にすぐれたもの』であるからだ。諸方の無技巧詩人よ。
나는 千家元麿(센게모또마로)氏의 詩를,日本詩壇에 있어서 唯一한 無技巧主義詩人이라고 前回에 말했지만 千家氏의 詩風처럼<엄청난 無造作한 詩風>으로 詩情을 충분히 발표할수 있다면 이런 수고가 없이 쉬운 일은 없으며 이점에서는 나의 平素羨望에 참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는바이지만 헌데 千家流의 無技巧主義를 다른 詩人이 借用한다고 해서 그렇게 간단하게 성공하는것은 아니다.그것은 千家氏
의 詩가 詩의 技巧를 超越한 <人格的인것>이 가장 먼저 第三者를 魅惑하는 것으로 그 詩는 <無條件 훌륭한것>이기 때문이다. 諸方의 無技巧詩人들이여!
無技巧主義は、千家氏に一任してをけ、そして決して『詩の技巧』をけいべつすること勿れだ。『独自な個性』とは『独自な詩風』を意味するものだと一言したい。
この間東京から私の家まで涯々(はる/゛\)やつて来た詩人広瀬操吉氏は、千家氏と親交の人である。
私の部屋で『日本詩人』九月号の千家氏の散文詩『小景』を二人で何回も繰返して読みながら、腹を抱へて笑つたのである。
殊に広瀬氏は千家氏の生活に接近してゐて、千家氏の日常を知つてゐるので、殊更に感じたらしかつた。
この散文詩『小景』は、稚気に満ちたものであつて、その底に人間的な苦悩の流れたものであつた。
この泣き笑ひの散文詩は、しみ/゛\と氏に対する好感がわいてくる。
無技巧主義는 千家氏에 一任해 놓고 그리고 결코<詩의 技巧>를 輕蔑하지 말게!<獨自의 個性>이라는 것은 <獨自의 詩風>을 의미하는것이라고 一言하고 싶다.
요전에 東京에서 내집까지 멀리서 온 詩人 広瀬操吉(히로세 소오키찌)氏는 千家氏와 親交인 사람이다.
내 방에서 <日本詩人> 9月號의 千家氏의 散文詩 <小景>을 둘이서 몇 번이나 반복하며 읽으면서 배를
끌어안고 웃은것이다.
특히 広瀬氏는 千家氏의 생활에 접근하고 있어 千家氏의 日常을 알고 있기에 더더욱 느낌에 와 닿은듯 하였다.
이 散文詩 <小景>은 稚氣로 가득찬 것이었으며 그 밑바닥에 人間的인 苦惱가 흐르는것이었다.
이 울고 웃는 散文詩는 절실하게 氏에 대한 好感이 솟구쳐 나온다.
夏
夏だ
若者よ
すばやく
女をつかまへよ
今年を過ごしたら
又来年まで待たなくてはなるまい
成績をあげよ。
여름이다!
젊은이여!
빨리
여자를 잡게나!
금년을 넘기면
또 내년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
成績을 올리게!
これは同じ『日本詩人』九月号の千家氏の詩『夏』の短唱だが、いゝ年輩をして子供の何人もある男が若者よ女をつかまへよ、今年を過ごしたら来年まで待たなくてはなるまい、成績をあげよ、成績をあげよ、としかも本人は生まじめに若者に向つてケシかけてゐるあたり、いかにも千家氏らしくて愉快ではないか。千家元麿氏と広瀬操吉氏との素朴な性格を伝へるに格好な世間話が詩誌『太平洋詩人』の九月号のゴシップ欄に出てゐる。
『武蔵野の夜は、静かで、空には星が澄んでゐた。聖い感激を持つて春を讃美しながら野を歩いてゐたのは千家元麿と広瀬操吉であつた。ところで急に二人共大便がしたくなつたのである。
生憎揃つて紙を持合せないので千家は畑の中で、広瀬は数間離れた溝の中で、簡単にすまし、千家は敷島の殻で拭き、広瀬は田圃の水でオイドを洗つた。』とある。私がこのゴシップをみつけて広瀬氏に見せると氏は苦笑した。
이것은 같은 <日本詩人> 9월호의 千家氏의 詩 <夏> 短唱이지만 나이도 지긋하고 아이들도 몇이나 있는 남자가 젊은이여!여자를 잡게나!금년을 넘기면 내년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 成績을 올리게! 成績을 올리게! 하며 게다가 본인은 아주 진지하게 젊은이를 향하여 부추기고 있으니 얼마나 千家氏다우며 愉快하지 않은가?千家元麿氏와 広瀬操吉氏의 소박한 성격을 전달함에 딱 맞는 세상이야기가 詩誌<太平洋詩人>의 9월호 gossip欄에 나와 있다.
<武蔵野의 밤은 조용하고 하늘에는 별이 맑고 깨끗하게 있다.聖스러운 感激을 가지고 봄을 讚美하면서
들판을 거닐고 있는것은 千家元麿와 広瀬操吉 이었다. 헌데 갑자기 두사람 모두 大便이 보고싶어진 것이다.
공교럽게도 종이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千家는 밭안에서 広瀬는 몇칸 떨어지 도랑 안에서 간단하게
일을 보고는 千家는 敷島(시끼시마) 담배 껍질로 닦고 広瀬는 논물로 엉덩이를 씻었다.>라고 있다.
내가 이 gossip을 발견하고 広瀬氏에게 보여주게!하자 氏는 苦笑하였다.
広瀬氏も殆ど無表情に等しい顔の持主だがその底に詩人らしい敏感の溢れてゐて私の郊外の家の窓から見える草原に、一匹の小牛が何時も突つ立つてゐた。
夜でもその牛は牧舎にいれられず、たゞ雨の降る日などは背中にズックを着せられてモーモー鳴いてゐたが、広瀬氏は朝起きるとそれが気掛りになるのか、朝霧の中に冷たさうに立つてゐる牛を見て『あの牛は風邪を引かんだらうか』と心配してゐたのなどは、いかにも詩人らしい同情だと私はひとり微笑したものであつた。
広瀬氏도 거의 無表情에 同等한 얼굴의 소지자이나 그 밑바닥에 詩人다운 敏感이 넘쳐 있으며 나의
郊外집 창문에서 보이는 草原에 한 마리 작은 소가 항상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밤에도 그 소는 牧舍에 들여넣지 않으며 단 비가 오는 날등은 등에 doek(면이나 마로 만든 거적대기)를 입혀져서 메~메~하고 울고 있지만 広瀬氏는 아침에 일어나면 그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아침 안개속에 차가운듯이 서있는 소를 보고는<저 소는 감기가 걸리지 않을까?>하며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詩人다운 同情인가!하고 나는 혼자서 微笑를 짓고 있는것이었다.
島の追憶製造人
寂しきグル-プのこと
小熊秀雄(오쿠마 히데오) 1926年
섬의 追憶製造人
쓸쓸한 Group의 일
私の夢想好きは私の体を流転させる、瞳をひらいて見るとちやんと異(ちが)つた風物が私の周囲に飾られてゐるのだ、暖かいなかに寝転んでさんざん勝手な夢に耽る、花は樹木は人は実(げ)に親しみ深い温床で私の魔力は自在な園丁だ。
しかし瞬間私は反逆するのだ、花と樹木と人々とに打たれることは実に快感を覚えるのである、なんといふ変質者よ。
내가 夢想을 좋아함은 나의 몸을 流轉시키며 눈동자를 열어 보면 짱~하고 다른 風物이 나의 周圍에 裝飾되어 있는것이고 따뜻한 속에 寢轉하여 마음껏 멋대로의 꿈에 빠지고 꽃은 樹木은 사람은 實로
즐길거리가 깊은 溫床으로 나의 魔力은 自在한 庭園師이다!
그러나 순간 나는 反逆하는것이며 꽃과 樹木과 사람들에 맞는다는것은 실로 快感을 느끼게 하는것이며 뭐라 할 變質者여!
一
在旭五年の私の記者生活は私を確かに生長させた。そして異常なものとしてしまつた、言換れば健康な半狂者に、周囲も私自身も絶えず過度に冷やしたり暖めたりし過ぎてしまつたのだ。ずゐぶん回転した心臓は肥(こえ)たが一方疲れた。呆れる程に多彩な追想[#「想」に「ママ」の注記]製造人はいまツンドラ[#「ツンドラ」に傍点]のある島カラフトの海岸の街に遁走してゐる。
しかし休息の舞台裏は実に寒い嵐はびゆう/\ふくし電柱は吠えるし今にも道具建がブッ倒れさうになり書割は空に舞ひあがり白い座席には見物人ひとり坐つてもゐない有様で新しい春を迎へる。
在旭五年의 나의 記者생활은 나를 확실히 生長시켰다.그리고 異常한것으로서 끝났으며,다시 말하면
健康한 半狂者에 周圍도 나자신도 끊임 없이 過度하게 차갑게 하거나 따뜻하게 하거나 하며 지내 버렸던것이다.상당히 回轉한 心臟은 살이 쪗지만 한편 피곤하였다.넌더리 날정도로 多彩로운 追想製造人은
지금 tundra의 어느 섬 Sakhalin의 海岸의 마을에 遁走하고 있다.
그러나 休息의 무대뒤는 실로 차갑고 거센바람은 휙휙~ 불고 電柱는 으르렁대고 지금이라도 道具建이 쓰러질듯이 되며 무대배경은 하늘로 날아 오르고 하얀 좌석에는 구경꾼 한사람 앉아 있지도 않는
모습으로 새로운 봄을 맞이한다.
二
そして『黒珊瑚』時代の魔力はうすれだし私の理想主義は悲鳴をあげてゐる。それでゐて懺悔録を書綴る程の優しい感情も燃えあがらずます/\無神論者になりたがるのはどうしたことか矢張りすくひのない隔世遺伝の産物位にあきらめてをくより仕方があるまい。
それにしても一九二五年より一九二六年の私と私の周囲はなんといふ寂しいへだゝりと変りやうであらう。
まるで多血質な
けだもののやうに四方に
駈けだした
のであつた。或者は都会に或者は田園に走りめいめいが気の済むやうに歩き廻つたり止まつたりした私の再度の上京についで寺島こと白木睦郎さんが退社して上京し中野の家で一緒に生活した古い『文章世界』で鳴らした往年の疵が新しい風に再び激しく痛みだしたのだ、私が引上げてからも踏止まつてゐたそして私の手紙に対して、
그리고 <黑珊瑚> 時代의 魔力은 엷어지기 시작하고 나의 理想主義는 悲鳴을 올리고 있다.그런대도
懺悔錄을 書綴할 정도의 아름다운 感情도 불타오르지 않고 더더욱 無神論者로 되고싶어 하는것은 어찌
된 일인지 역시 救濟가 없는 隔世遺傳의 産物정도로 단념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건 그렇다 하여도 1925년에서 1926년의 나와 나의 周圍는 뭐라할 쓸쓸한 隔離로 변하는것 같은것일거다.
마치 多血質인
짐승처럼 四方으로
치닫기 시작하였다!
인것이었다.或者는 都會로 或者는 田園으로 달리며 각자가 만족하는것처럼 돌아다니거나 멈추거나 하였으며 나의 두 번째의 上京에 대하여 寺島こと白木睦郎상이 退社해서 上京하여 中野의 집에서 함께
생활했으며 오래된 <文章世界>에서 울린 버릇이 새로운 식으로 다시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던것이며 내가 돌아오고나서도 머물고 있었으며 그리고 나의 편지에 대하여,
『君の最近の心情が解る反逆者は永久に旅人であらねばならないこの私を見てをくれ齢三十過ぎて未だ家を成さず完全に放浪をつゞけてゐる併も妻子を抱へてだ』
といふ私の帰郷の複雑な心理に同情ある返事がきたきり其後ぷつつり音信がない状態にあるが今でも文壇への根強い進撃をしてゐることと思つてゐる。病気で剣淵村に帰つてゐる国井正重君も私たち同様『芸術』といふ悪魔の鋭い爪に胸を掻かれた一人だ、不評判とはいへ彼の本紙の創作欄に夏頃発表した『柿の実』は彼の苦るしみをその前半と最後とから汲とることは容易であり如何に彼が『愚しいそして虚無な人生』にもとめて苦るしむ『我等の仲間』の真面目な一人であることか。
<자네의 最近의 심정을 아는 反逆者는 永久히 나그네가 아니면 안되는 이러한 나를 보아두게!나이 삼십이 넘어서 아직도 가정을 이루지 않고 완전히 放浪을 계속하고 있으며 그래도 妻子를 안고 있다!>
라고 하는 나의 歸鄕의 복잡한 心理에 同情있는 대답이 왔을뿐 그후 딱 音信이 없는 상태에 있지만
지금도 文壇에의 끈질긴 進擊을 하고 있는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병으로 劍淵(켄부찌)마을에 돌아가
있는 國井正重君도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藝術>이라고 하는 惡魔의 날카로운 발톱에 가슴을 긁힌 한사람이며 不評判이라고는 하나 그의 本紙의 創作欄에 여름무렵 발표한 <감의 열매>는 그의 괴로움을
그 前半과 最後에서 퍼내는것은 容易하며 얼마나 그가<어리석고 그리고 虛無한 人生>에 요구하며 괴로워 하는 <우리들의 친구>의 진지한 한사람인것인가?
『静夜断想』に私と同じく追憶製造人である山木力君もいまだに成仏の出来ない一人であり旭川文壇の思ひ出に涙を流してゐるし運動部の菱谷さんまた『菱花』の俳名の主でます/\枯淡な寂境の歩み編輯次長の安部さんの創作そして御大昇編輯長はロシア文学で知られてゐる昇曙夢氏を兄貴にもつだけ大の読書家で新思想の理解者である。
私のダダつ児に絶えずなやまされた小林社会部長また『モントブレアの哀しさよ』の隠れたる抒情詩人昨年一月のある雪の日のカフェートラヤで酔って煙筒に接吻するといふ馬鹿気たわたしの狂乱時代にいつも背をたゝいて私の興奮を静めてくれた優しい小父さんであり、老荘の虚無恬淡の説そのまゝの東洋風な秋山老人、啄木張りの反逆児西部健而クン等々隠遁回避の人あり、孤独な騒人家あり、また青春のテロリストあり偏癖な詩人あり、酒神礼拝信者あり遠く走つた僕また島の追憶製造人として潮鳴を聴きつゝ旭川新聞編輯局の過去の日の寂しきグループを幻想する、そして『ジァーナリストと芸術』との浅からぬ因果関係に戦慄してゐる殊に最近の私は『底の底までしみ徹つた流浪性』をみづから感得する、現在私の住む『ふるさとに似た土地』もすでに気の利いたカフヱ[#「ヱ」は小文字、356-2-11]ーのない一事でも住むこ事の堪えられない街であるのだ
<静夜断想>에 나와 똑같이 追憶製造人인 山木力君도 아직 成佛을 할 수가 없는 한사람이며 旭川文壇의 생각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으며 運動部의 菱谷상 또 <菱花>의 俳名의 주인으로 더더욱 枯淡한 寂境의 발자취인 編輯次長인 安部상의 創作 그리고 御大昇編輯長은 Russia文學으로 알려져 있는 昇曙夢氏를 형님으로 둘만큼 大讀書家로 新思想의 理解者이다.
나의 응석받이에 끊임없이 시달림을 받았던 小林社会部長 또 <モントブレア의 슬픔이여!>의 숨은 抒情詩人 작년 일월의 어느 눈내리는 날의 Cafe トラヤ에서 취하여 굴뚝에 입맞춤을 한다고 하는 어리석은 나의 狂亂時代에 항상 등을 두두리며 나의 興奮을 진정해 주었던 자상한 小父상이며 老荘의 虛無
恬淡의 說 그대로의 東洋風인 秋山老人,啄木張り의 反逆兒 西部健而君 等等 隱遁回避의 사람이며 고독한 風流人이며 또 靑春의 terrorist이며 偏癖한 詩人이며 酒神禮拜信者이며 멀리 달아난 나 또 섬의 追憶製造人으로서 潮鳴을 들으며 旭川新聞編輯局의 過去 시절의 쓸쓸한 group을 幻想하며 그리고 <저널리스트와 藝術>과의 얕지 않은 因果관계에 戰慄하고 있으며 특히 최근의 나는<밑바닥 속까지 배어들은 流浪性>을 스스로 感得하며 현재 내가 사는<고향과 닮은 土地>도 이미 멋진 Cafe__가 아닌_일지라도 산다는것을 참을수가 없는 거리인것이다!
ふるさとは遠くに
ありて思ふもの
そして悲しくうたふもの
よしやうらぶれて
の魚眠洞主人犀星の詩『ふるさと』もピンとくる、そして
よしやうらぶれて
異土の乞食となるとても
かへるところにあるまじや
かへるところにあるまじや
고향은 멀리에
있어서 생각하는것
그리고 슬프게 노래하는것
설사 초라해져서
라는 魚眠洞主人犀星의 詩 <고향>도 뿅~하고 오며,그리고
설사 초라해져서
異土의 乞食이 된다 하여도
돌아갈곳에 있어서는 안된다!
돌아갈곳에 있어서는 안된다!
と愛誦措かない私の心境であるのだ迎春第一の感に島の追憶製造人はやがて樺太の野に草萌えゴメが鳴きオダマキ草や黒百合の花が咲くころ私の変質が頭をもたげて、『異土の乞食となるとても』とふらりふらりとオコックの暖流に乗つて浮気な旅をしなければよいがと他人事のやうに気懸りなのである。(樺太トマリオロ街にて)
하며 愛誦을 멈추지 않는 나의 心境인것이며 迎春第一의 感에 追憶製造人은 마침내 樺太(Sakhalin)의들에 草萌えゴメ가 울고 매발톱꽃이나 黒百合의 꽃이 필무렵 나의 變質이 머리를 쳐들고 <異土の乞食이 된다 하여도>하며 훌쩍 Okhotsk의 暖流를 타고 浮氣한 여행을 하지 않으면 좋은데 하며 남의 일처럼 걱정하는것이다.(樺太 トマリオロ 거리에서)
『雲雀』の抒情詩人
<雲雀>の 抒情詩人
小熊秀雄(오쿠마 히데오) 1926年
雨にけむられたり、日光に晒されたり旅をするものは、様々の風景の中を、鳥類や獣のやうに馳け廻る、だから放浪者の心情と云ふものは全く燃焼し尽し、早い話が俗界のものではないのだ
人間はどうせ一個所にじつと静まつてゐたところで永久石になどなれつこないのだから、感情の旺溢のまゝに旅愁の味覚に酔ふことだ、風雨は彼の五体にまつたく実に千金の青い苔を生やして呉れる
いま私の語らうとする詩人広瀬操吉も久しく詩壇から離脱して数年間の放浪をつゞけ最近一年ほど愛知県犬山、木曾の清浄にこもつて独自な詩風を練つたその旅情は祭日に放たれた赤い風船の青空に消える哀愁ではなく、草から空に舞ひあがつた雲雀のほがらかな歌の旅である
この可憐な鳥類が雲の上から何を展望したか
ゴツホが走つてゆく姿が見えたのだ
ゴッホは大きい画板を肩からかけて
と『ゴッホの幻影』に驚喜したりまた雲雀は近代都市の上空にあらはれて『牡丹色に美しく塗られた馬車』の白昼夢を見たりした、まるで気儘な色彩家(ころりすと)で、またもの驚きをする児供のやうに、星座とバラ色の太陽に甘えてゐる彼には私は好感を持たないわけにはいかないのだ
彼は私のために『三日月』『花束』の二つの詩篇を送つてくれた
廃頽の洗礼を受けてサンボリストの救ひのない一種の深刻癖を泳いでゐる私の詩風の立場から私は彼から『詩の純情』を多大に教へられた
日本ラインの詩境に蓄積された彼の雲雀の唄は一巻の処女詩集『雲雀』となつて最近出版された野口米次郎、千家元麿、中西悟堂、佐藤惣之助の諸詩人の発起で彼の詩の発足を祝福した出版記念会も十二日銀座のアルプスで催された、きつと盛んであつた事と思ふ彼の親しみぶかい詩篇は呼かける――抒情詩人にちがひないがその底にもつとも貴重な苦労味の流れてゐるのは甘さをもつて終始する他の抒情詩人とちがつた捨がたい詩風を持つてゐる点だ、私は彼の発足を祝福しこの純情な詩人の詩集を諸君に奨めたいと思ふ彼は署名して送つてよこすだらう。
<雲雀>의 抒情詩人
비에 부예지거나 日光에 쪼이며 여행을 하는것은 여러 가지 風景 속을 鳥類나 짐승처럼 쏘다니나 따라서 放浪者의 心情이라 하는것은 완전히 燃燒해버리니 간단히 말하면 俗界의것은 아니다.
人間은 어차피 한곳에 가만히 조용해진 곳에서 永久石따위로 되지 않는것이기에 感情이 旺溢한채로
旅愁의 味覺에 醉하는것이며,風雨는 그의 五體에 완전히 실로 千金의 푸른 이끼를 길러준다.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詩人 広瀬操吉(히로세 소오키찌)도 오래도록 詩壇에서 離脫하여 數年間의 放浪을 계속하여 最近 일년정도 愛知県 犬山(이누야마),木曾(키소)의 淸淨(쇼오죠오)에 파뭍혀서 獨自인 詩風을 다듬었으며 그 旅情은 祭日에 띄운 빨간 風船이 푸른 하늘에 사라지는 哀愁는 아니며 풀에서 하늘로 튀어오른 雲雀의 명랑한 노래의 여행이다!
이 可憐한 鳥類가 구름 위에서 무엇을 展望했을까?
Gogh가 달려가는 모습이 보인것이다!
Gogh는 커다란 畵板을 어깨에서 걸치고
하며 <Gogh의 幻影>에 驚喜했거나 또 雲雀은 近代都市의 上空에 나타나서 <牧丹色으로 아름답게 칠해진 馬車>의 白晝夢을 꾸었거나 했으며 마치 제멋대로인 色彩家(colorist)로 또 무엇에 놀란 어린애처럼 星座와 장미빛 太陽에 응석부리고 있는 그에게는 나는 好感을 갖지 않아서는 안되는것이다!
그는 나를 위하여 <초생달> <꽃다발>의 두개의 詩篇을 보내 주었다.
廢頹의 洗禮를 받아 symboliste의 구제가 없는 一種의 深刻癖을 헤엄치고 있는 나의 詩風의 立場에서 나는 그에게서 <詩의 純情>을 多大하게 배웠다.
日本 line의 詩境에 蓄積된 그의 雲雀의 노래는 一卷의 處女詩集 <雲雀>으로 되어서 最近 出版된 野口米次郞,千家元麿,中西悟堂,佐藤惣之助의 諸詩人의 發起로 그의 詩의 發足을 祝福했던 出版記念도 十二日 銀座의 Alps에서 개최되었으며,분명 성황이었을것이라 생각하며 그의 친밀감 깊은 詩篇은 호소한다____抒情詩人과 다른 버리기 어려운 詩風을 가지고 있는 点이다!나는 그의 發足을 祝福하고 이 純情한 詩人의 詩集을 諸君에게 추천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그는 署名하여 보내 올것이다.
馬糞紙の恋人
アレクサンドル・ブロオグ死後五年
馬糞紙 戀人
アレキサンドル.ブロオグ死後五年
小熊秀雄(오쿠마 히데오) 1926年
馬糞紙 戀人
알렉산더 블로끄 死後五年
私がアレキサンドル・ブロオグに愛着を感じたのは数年以前のことであつた、当時私は『恋愛』といふ麗しい風貌を探究することに専念であつたので、すべての読物からこの『桃色の幽霊』の正体を探し求めた。
恋は争闘の一種であり、また神秘な仮面劇のやうにもの静かで、また淡紅色の薔薇の花弁の中の祭日よりも抒情的に、一面に殺戮を好む蛮人よりも剽悍に敏捷だ。
恋に苦しんでゐる友達を、じつと遠くからながめてゐると、丁度野で投繩にかけられた獣のやうに転々と土に悶えてゐる。
ゆるめたり引き締めたり、なんといふ残忍な投げ手といふものだらう。
私はかうした種々な恋の相(すがた)を遠望したり、ときには惨めな獣の一匹になつたりしてゐる或日。
내가 알렉산더 블로끄에 愛着을 느꼈던것은 數年以前의 일이었으며,當時 나는 <戀愛>라고 하는 아름다운 風貌를 探究하는데에 專念이었기 때문에 모든 讀書에서 이 <桃色의 幽靈>의 正體를 探究하였다.
사랑은 爭鬪의 一種이며,또 神秘한 假面劇처럼 차분하며 또 淡紅色의 薔薇 꽃잎속의 祭日보다도 抒情的으로 一面에 殺戮을 즐기는 蠻人보다도 剽悍하게 敏捷이다!
사랑에 괴로워 하고 있는 친구들을 가만히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면,바로 들에서 投繩에 걸린 짐승처럼 데굴데굴 흙에 몸부림 치고 있다.
느슨하게 하다가 바싹 댕기거나 하면서 얼마나 殘忍한 投手라 하여야 할것인가!
나는 이러한 種種의 사랑의 모습을 遠望하거나 때로는 비참한 짐승의 한 마리로 되거나 하고 있는 어느날.
私はロシアの一人の象徴派詩人の詩劇『見世物小屋』一篇から、偶然怪異で真実である『桃色の幽霊』の正体を指示されたのだ、
そして私は虚無を感じ、歓喜をあげた。
ブロオグは『見世物小屋』で人生をもつとも狭い惨めな見世物小屋と観た。
登場するピヱロと、美しいコロムビーナとは、近代的恋愛の代弁者であり、殊に眉も鬚もない蒼ざめて心配さうな顔をしたピヱロは混沌と懐疑との絶頂にある近代人の具象化である。
나는 러시아의 한 象徵派詩人의 詩劇 <假設興行場> 一篇에서 偶然怪異로 眞實인 <桃色의 幽靈>의 正體를 指示받았던것이다.
그리고 나는 虛無를 느끼고 歡喜를 올렸다.
블로끄는 <假設興行場>에서 人生을 가장 좁고 비참한 假設興行場으로 보았다.
등장하는 삐에로와 아름다운 코롬비나와는 近代的戀愛의 代辯者이며 특히 눈썹도 수염도 없는 창백하고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삐에로는 混沌과 懷疑의 絶頂에 있는 近代人의 具象化이다.
ブロオグの描いたピヱロは、恋に酔ふことのすでに出来得ない重厚な懐疑に沈んだ私であつたのだ。
ピヱロの永遠に求めるコロンビーナは、羯鼓をちやら、ちやら、鳴らしてゐる友達が連れて行つて了つた、
彼女はばつたりと雪の上に倒れた。ピヱロはぽけつと[#「ぽけつと」に傍点]から笛をとり出して鳴らしながら、じつと倒れてゐる彼女を視てゐた、彼女は次第に白々と色あせて、ついにボール紙でつくつた人形になつてしまつた。貴重な『美しいものも』ピヱロの救ふことのない近代人の病患の眼には『ボール紙でつくつた花嫁』と映じたといふことは、恋までも試験管とフラスコで解決をしようとする近代科学の態度は、悲しくもまた愚しいものであり、若し恋の出来ない諸君があつたなら、諸君もまた自我分裂の悲惨なピヱロの一人であると思ふ。恋は安易な遊びであり、夢幻の争闘であり、酔ふことに忠実でなければ決して成功するものでは無いと私は信ずる。『見世物小屋』以来私はブローグの作品に注意をしだした。
彼は相当に偉大な仕事をしてゐた。殊に彼の詩『十二』は私を感激さした。『ロシヤは―嵐だ』と叫んだブローグは、しかもその嵐の最中、革命の都莫斯科(モスコー)で壊血病で斃れたのは、丁度今から五年前の先月の五日であつたのだ。
블로끄가 그린 삐에로는 사랑에 취했지만 이미 가질수 없는 重厚한 懷疑d[ 빠진 나였던것이다.
삐에로가 永遠히 찾는 코롬비나는,羯鼓를 짤랑~짤랑~ 울리고 있는 친구가 데리고 가버렸으며,
그녀는 털썩~하고 눈위에 쓰러졌다.삐에로는 pocket에서 피리를 꺼내 불면서 가만히 쓰러져 있는 그녀를 보고 있었으며,그녀는 점차로 새하얗게 退色하였고 결국은 板紙로 만든 人形으로 되어 버렸다.貴重한 <아름다운것도> 삐에로가 救하지 못한 近代人의 病患의 눈으로는 <板紙로 만든 새색씨>로 비추었다고 하는것은 사랑까지도 試驗管과 frasco로 解決을 하려고 하는 近代科學의 態度는,슬프고도 어리것은것이며,젊은 사랑을 하지 못한 諸君이 있다면 諸君도 또 自我分裂의 비참한 삐에로의 한사람이라고 생각한다.사랑은 安易한 놀이며 夢幻의 爭鬪이며 醉함에 忠實하지 않으면 결코 成功하는것은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假設興行場> 以來 나는 블로끄의 作品에 注意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상당히 偉大한 일을 하고 있었다.특히 그의 詩 <十二>는 나를 感激시켰다. <러시아는 - 폭풍이다!>하고 외친 블로끄는 게다가 그 폭풍우의 絶頂에서 革命의 都莫斯科(Moscow)에서 壞血病으로 斃했던것은 바로 지금부터 五年前인 지난달 五日이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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