評論・エッセイ(一九二五年)
小熊秀雄(오쿠마 히데오)
異常なる青馬 (이상한 청마)
ロシア憧憬者の煽動詩 (러시아 동경자의 선동시)
一
反逆のないところに芸術はないかりにあつたとしても熱情のない夢遊芸術であり、昨日と今日の作業であり明日の進軍ではないのである。しかし熱情はけつして運動を意味してはゐない。静止した風に送別され静止した帆が、矢のやうに潮流の旅行をつづけてゐるのを自分はたまたま発見する、例へば芸術上の虚無主義などは鮮明に静止した帆と言ふことができる、虚無主義の根は反逆と憤懣と感激との凝結であつてけつして無抵抗の悦楽と安住とに人生の悩苦を逃れようなどといふ臆病者ではないのである。凍結した火、潜まつた嵐であり、見えざる進軍であるのである
반역이 없는곳에 예술은 없으며 설령 있다해도 정열이 없는 몽유예술이며,어제와 오늘의 작업이지 내일의 진군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정열은 결코 운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지된 바람에 송별되어 정지된
돛이 화살처럼 조류의 여행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것을 우리는 때때로 발견하는데, 예를 들면 예술상의 허무주의등은 선명하게 정지된 돛이라 할 수가 있으며,허무주의의 뿌리는 반역과 분노와 감격의 응결이지 결코 무저항의 열락과 안주에서 인생의 번뇌를 벗어날려는 겁쟁이는 아니다. 응결된 불,숨어있는 폭풍우이며 보이지 않는 진군인 것이다.
あの草地を歩いてゐる馬
を思想のかたまつた
形ちでないといふのは誰か
馬 々 々 々 々
ならんだまゝに動いてくる。
저 풀밭을 걸어가고 있는 말
을 사상이 응집된
형태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말 말 말 말 말
나란히 나란히 움직이면서 간다.
私の憧憬するロシアは、馬の顔である、異常なる青馬、虚無のあらゆる形態の変形した前進である。未到の芸術にむかつて征矢を放つ我等、殊に北国に出産した吾人が何故に近隣の偉大なる馬を愛さないのか、愛撫する者があつても理解しないのか、幸福に失明した鉄の上の豆よ。
내가 동경하고 있는 러시아는 말의 얼굴이며 이상한 청마,허무가 지닌 모든 형태로 변형된 전진이다.
미래의 예술을 향하여 화살을 쏘는 우리들,특히 북국에서 출산한 우리들이 왜 인접해 있는 위대한 말을 사랑하지 않는가? 애무하는 자가 있어도 이해하지 못하는가? 행복에 실명한 鉄의 콩이여!
日にさらされた
一粒の豆のやうに
俺達は乾からびて
しなびたまゝに
いつまで熟睡をしてゐる
햇볕에 그슬린
한 알의 콩처럼
우리들은 말라 비틀어져
시든채로
언제까지고 깊은 잠에 빠진다
新しい発足もやつてこない悲しい安眠の豆達、向地性を忘失した心臓のやうに震へたまゝに日暮となる、闇雲となる鉄の上の俺達の豆よ。
새로운 발족도 하지 않으면서 슬프게 잠이든 콩들,향지성을 망실한 심장처럼 흔들 흔들하면서 어스름
저녁이 되고 시커먼 구름이 되는 鉄위에 있는 우리들의 콩이여!
二
我々北国人は、もつとも彼等と接近し、彼等と握手をしてゐなければならない筈であるのに、永久の隣人として永久に離別してゐるのは何故であるか、いつまでもハーモニカ吹奏者であるのか、すばらしい力感芸術を見せてくれ、我々北国人は隣人の馬に乗つて前方の敵を射撃(うつ)てひとりよがりの南国讃美者連の後頭部を氷の鉄槌でドヤしつけてやらうではないか。
우리들 북국인은 원래가 그들과 접근하여 그들과 악수를 하지 않으면 안됨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이웃으로서 영원히 이별함은 무슨 이유인가? 언제까지나 하모니카 연주자인가? 멋 진 역감예술을 보여 주라! 우리들 북국인은 이웃의 말을 타고 전방의 적을 사격하여 독선적인 남국찬미자들의 후두부를 얼음철퇴로 .....하지 않으면 안될까?
手を見よ
ひろげた大きな掌(て)を見よ
血だらけな
群集の掌(て)を見よ
손을 봐라
펼쳐진 커다란 손바닥을 보아라
피투성이가 된
군집의 손바닥을 보라
血だらけの大きなロシアの掌と握手をせよ。悲劇と犠牲との熱烈な愛好者ルナチャルスキー、最後の粉砕を讃へるアレクサンドル、ブロック鋼鉄を絶叫するキリーロフ等、等、等、赤色の野には我等の友人が充満してゐるではないか、我々が日夜幸福にふくらんだ日本の寝具にねむつてゐるときに、彼等は、隣人は、ヱレンブルグは革命の砲火と飢餓から脱してモスクワの『印刷の家』(ドーム・ベチャーチ)の部屋に飛びこみはげしい寒気に大きな赤旗の中にくるまつて寝てゐる。我々日本の詩人が滑らかなアート紙に安逸の活字を羅列してゐる頃に、彼等は包み紙に肉筆の詩句をつらねて一片のパンにかへてゐる。
피투성이의 커다란 러시아의 손과 악수를 하라! 비극과 희생의 열렬한 애호자 루나챠르스키,최후의 순수를 예찬한 알렉산드로, 블록 동철을 절규하는 키리로프 등, 등,등 적색의 들판에는 우리들의 친구가
충만해 있는것은 아닌가? 우리들이 밤낮으로 행복에 부풀은 침구에서 뒹굴고 있을때에 그들은 이웃은,
유렌부르그는 혁명의 포화와 기아에서 벗어나 모스크바의 <인쇄의 집> 방으로 뛰어 들어가 격렬한 한기에 커다란 붉은 깃발속을 구르면서 자고 있다. 우리들 일본 시인이 매끄러운 아트지에 안일한 활자를
나열하고 있을 즈음에,그들은 포장지에 육필의 싯구를 적어서 한조각 빵으로 바꾸고 있다.
到来せよ無神の日本
新しい心霊革命の日
わたしの乞食は
いつまでも恵まれるな
오라! 無神의日本
새로운 심령혁명의 날
나의 걸식은
언제까지고 혜택을 받지 않으리요!
地下室では硝石をごろごろ磨る何処でも浮浪人はいつぱいだ。なんといふ危険に充血したわたしの煽動者の眼であるか。
지하실에서는 소석을 카르릉 카르릉 고양이소리 마냥 갈고 있으며 노숙자는 거리마다 가득하다.
무어라 하여야 하나.. 위험에 충혈된 나의 선동자의 눈일까?
農奴時代 (一九二五年)
小熊秀雄(오쿠마 히데오)
(上) 青馬の食慾のこと
いまでこそ私は、冷たい舗石道の上を歩いてゐる、ステッキを風車(かざぐるま)のやうに、なやましい青春の放蕩児ではあるが、これでもかつての日の銅線のやうな太いラインの生活農奴時代の追憶をもつてゐる私である、このんで私は[#「は」に「ママ」の注記]作品の上に「馬」の顔があらはれるのは、いくぶんこの関係がある。
(上) 靑馬의食慾이라는 것.
지금이야말로 나는 차가운 敷石 길위를 걷고 있으며 stake를 風車처럼 괴로운 靑春의 放蕩兒이기는 하지만 이래 뵈도 이전에는 태양의 銅線과 같은 굵은 line의 생활 農奴時代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나이며 기꺼이 나는 작품上에 <馬>의 얼굴이 나타나는 것은 다소 이러한 관계가 있다.
多く馬を知り尽したものでなければよりよく馬の思想を解しないわけである、詩なんてよい加減のものだ、ことに近頃の所謂詩人輩の作詩態度位信用のをけないものはなからう、これを私は「詩の職人」と呼びかけたい、だから私の粗暴な言「詩なんてよい加減のものだ」が吐かれるのだが、強ひて言責を負へばこの一章の上に「近頃の」を附加してもよい
どこにもこゝにも
街角には
青い子供でいつぱいだ
많이 馬를 다 알아내지 못하면 보다 잘 말의 사상을 이해할수가 없으며 詩따위 적당히 하는 것이며 특히 요즘의 所謂 詩人들의 作詩태도 만큼 信用을 할수 없는것은 없을 것이며 이것을 나는 <詩의 職人>이라 부르고 싶고 따라서 나의 粗暴한 말<詩따위 적당히 하는 것이다!>라고 내뱉는거지만 궂이 言責을 떠 맡으면 이 一章上에 <요즈음의>를 附加해도 좋다!
어느곳에도 여기에도
길 모퉁이에는
파란 아이들로 가득하다
永久に泥濘の深さである街上にあまりにこれらの青い子供が充満してゐる「燃えてゐる魂」の詩はかげを潜めてゐる、あんな風な作詩なら、ちよつと小器用な者なら一晩に二百は楽なものだらう、あまりに「こねあげ」が多すぎる詩壇である。
結局は凝視の足りないことに帰する、体験の尊ばれる理由は、体験が凝視を誘発するひとつの方便であるからだ。
永久히 진흙탕 깊이인 길위에 너무나도 이들 아이들이 充滿하고 있으며<불타고 있는 魂>의 詩는 그림자를 숨기고 있으며 그러한 식의 詩作이라면 조금 적은 재주가 있는자라면 하룻밤에 二百은 樂한 것일것이고 너무나도<반죽>이 너무 많은 詩壇이다.
결국은 凝視가 足하지 않는것에 돌아가며 체험이 존중되지 않는 이유는 체험이 凝視를 誘發하는 하나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だと言つて同時に「体験の旗」を振りかざす集団は鼻について嫌味である、要するに凝視は透徹である、体験をしなくてもそれ位の詩人の瞳の所有者でなければ、ペンを折れである、自称詩人の冠頭辞を、神に返上せよである
発足した私の青馬
毛なみは房々と風になびき
野にたつ生活は若々しい
그렇긴 하여도 同時에<체험의 깃발>을 내세우는 집단은 코에 붙여서 비아냥거리며 요컨대 凝視는 透撤이며 체험을 하지 않아도 그 정도의 詩人의 눈동자를 가진 소유자가 아니면 pen을 꺽으며 自稱詩人의 冠頭辭를 神에게 返上하시요!이다
發足한 나의 靑馬
털의 결은 훨훨 바람에 나부끼고
들판에 선 생활은 젊디 젊다
ところで私の本論、馬の宣伝にはひる、馬は可愛いものである、詩をものす私等に馬の思想を解しないやうな不透徹な詩人は話せない、私の農奴時代にもつとも興味をそゝつたものは馬だそれだけに私は他人(ひと)よりも、馬を歌ふことに自信をもつてゐる、凝視の表現に透徹した瞳をもつてゐると自称する。
그런데 나의 本論,말의 宣傳에 들어가서 말은 사랑스러운 것이고 詩를 짓는 우리들에게 말의 사상을 이해하지 않는듯한 不透撤한 詩人은 말할수 없으며 나의 農奴時代에 가장 흥미를 자아낸 것은 말이며 그것 만으로 나는 他人보다도 말을 노래함에 自信을 가지고 있으며 凝視의 표현에 透撤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고 自稱한다.
君等は馬の幅広い頸を平手で叩いたことがあるか、それはすばらしい響きを発するものである、勇壮な、はつらつとした世紀の声である、また非常に彼の食慾が異常に潔癖なものでまた自然を咀嚼し嚥下する自由で敏感な大きな歯をもつてゐるのである
この青馬の奔放な食慾
早朝の爽やかさに
漫歩し
雨のような喜びにひたつて
青草を喰べる
白樺の樹皮を喰べる
그대들은 말의 두툼한 목을 손바닥으로 두드려 본적이 있는가?그것은 멋진 음향을 發하는 것이며 勇壯하고 발랄한 世紀의 목소리이고 또 대단히 그의 食欲이 異常으로 潔癖한 것으로 또 自然을 咀嚼하고 嚥下하는 自由로 민감하고 커다란 이빨을 가지고 있는것이다.
이 靑馬의 奮放한 食欲
이른 아침의 상큼함에
漫步하고
비와 같은 기쁨에 적시어
靑草를 먹고
白樺의 나무 껍질을 먹는다
私の未発表のものに「青馬の食慾」の長詩篇があるほどに、彼の食餌の幸福さを讃へてゐる、私はよく彼にまたがつて樺太の未墾の大樹林に踏みいつた、私の愛馬はことに「かんぞ」の黄色い花弁を好んで喰べた、私はそこで馬と同じやうに大きく心室の扉をひらいて崇高な自然の大気に呼吸(いき)した、頭上の大樹の梢には
潜まりきつた空気を
ふるはせて
とうとうと空にむかつて
大樹にむかつて
咏嘆の鼓をうつ楽手
啄木鳥の不断の悲壮なる生活の声をきいて私はしだいに長生した。
나의 未發表의 작품에<靑馬의 食欲>이라는 長詩篇이 있을 정도로 그의 먹이의 행복함을 찬양하고 있으며 나는 곧잘 그를 올라 타고 樺太의 未墾인 大樹林으로 밟아 들어갔으며 나의 愛馬는 특히 <甘草>의 노란 꽃잎을 즐겨 먹었으며 나는 거기서 말과 똑같이 커다란 心室의 문을 열고서 숭고한 自然의 大氣에 호흡을 하였고 頭上의 큰 나뭇가지 끝에는
숨어버린 空氣를
흔들어서
당당하게 하늘을 향하여
大樹를 향하여
咏嘆의 북을 두드리는 樂士
딱따구리의 不斷의 悲壯한 생활의 목소리를 듣고 나는 점점 長生하였다.
(中) 唐草模様の生殖
私のふるさとは涯しれぬ遠望の土と空、そこに棲息する私の幸福はどんなであつたか、その自由さは都市の騒音と埃と鋼鉄の醜く汚濁した都の土や空とは似てもにつかぬ清浄にかぎりなく拡げられた自然の大きな掌であつた。放牧の厩舎はてん/\と建つ、その周囲を遊歩する私の馬、彼女のたてがみは日射をうけて青銅の馬となる。その仕事着はうつくしい青羅紗製のまんと[#「まんと」に傍点]に見える。
(中) 唐草模樣의生殖
나의 고향은 끝을 알수가 없는 遠望의 흙과 하늘,그곳에 棲息하는 나의 행복은 어떤것이었나?
그 自由로움은 도시의 소음과 먼지와 銅鐵의 추하게 汚濁한 도시의 흙과 하늘과는 닮을래야
닮을수가 없는 淸淨으로 한 없이 펼쳐진 自然의 커다란 손바닥 이었다.放牧의 마굿간은 点点으로
세워지고 그 주위를 遊步하는 나의 말,그녀의 갈기는 햇볓을 받아서 靑銅의 말로 된다.그 작업복은
아름다운 靑羅紗製의 외투로 보인다.
彼はまんと[#「まんと」に傍点]をかゞやく太陽にむかつてひろげその激情の外套であらゆるものを抱く、万象にむかつて食慾を煙花(はなび)のやうにふりそゝぐ。
私は馬上に口笛を吹く
幼年の柔らかい
呼吸(いき)を静かにくりかへす
放たれた北方の馬の
かゞやかしい出産の呼吸(いき)を
그는 외투를 번쩍이는 태양으로 향하여 펼치고 그 격정의 외투로 모든것을 끌어 안고서 萬象에
향하여 食欲을 煙花처럼 쏟아 낸다.
나는 말위에서 휘파람을 분다
幼年의 부드러운
호흡을 조용하게 반복한다
풀어 놓은 北方의 말의
눈부신 出産의 호흡을
地上には花が咲きみだれ、ことに孟蘭盆花がたくましい青い茎の頑丈さを見せて、北国の花らしい熱烈な赤をちらばしてゐる『やちだも』の樹がはるかに風にをのゝく黒緑の法衣をつけて男々しい聖霊の姿とひるがへる。
私は毎日かうした『馬の飼育』と乾からびた未墾地の赤土に建てられた鶏舎の一角で『孵卵器の番人』をやつて生活した。
地上에는 꽃이 어지럽게 피고 특히 孟蘭盆花가 튼튼하고 파란 줄기의 건장함을 보이고 北國의
꽃다운 熱烈한 赤을 흩어 내고 있는<야찌다모>의 나무가 아득히 바람에 떠는 검은 테두리를 한
法衣를 걸치고서 남자다운 聖靈의 모습으로 나부낀다.
나는 매일 이러한 <말의 사육>과 바싹 마른 未墾地의 赤土에 세워진 닭장의 한 모퉁이에서
<鷄卵器의 잡부>를 하며 생활 하였다.
夜のランプの傍に細長い検卵器を据つけて、純白な円形の中心に不思議にもしだいに黒い斑点の生命(いのち)の発生がひろがるのを、小さな雛つ子の血脈の成長するのを見てゐた。
味覚の忘失した地上の魚
鰓をうごかし水草の
黄と青の風景を
さまよふ魚
밤의 lamp 옆에 가느다란 檢卵器를 설치하고서 純白한 타원형의 중심에 이상하게도 점차로 검은
반점의 생명의 발생이 펼치는것을 작은 새끼의 血脈이 성장하는 것을 보고 있다.
味覺이 忘失한 地上의 물고기
아가미를 움직이며 水草의
黃과 靑의 風景을
떠도는 물고기
私は超人の自然境に青馬と化してさびしく咲きほこつたあざみ[#「あざみ」に傍点]の葉のやうに尖々とひろがつた屋根を遠望し、青草の遊歩場と隣接したいたましい魚の生活の砂を噛む味覚の忘失に憐れみをそゝいだりした。
植物の子葉の傍で大立笛(ばつすーん)を吹いて自(みづから)『馬鹿の実験』と称してゐたダルヰンの博物にたいする恩愛のやうに私は『馬語』を解しようといふ馬鹿らしい独語を彼女にさゝげたりした。
나는 超人의 自然境에 靑馬로 변하여 활짝 핀 엉겅퀴 잎처럼 뾰족하게 펼쳐진 지붕을 遠望하고
靑草의 遊步場과 인접한 측은한 물고기의 생활의 모래를 씹는 味覺의 忘失에 동정을 쏟아 내었다.
식물의 子葉 옆에서 Basoon을 불고 나<바보의 실험>이라 稱하고 있던 Dalton의 博物에 대한 恩愛처럼 나는<馬語>를 이해하려고 하는 바보스러운 독일어를 그녀에게 바치기도 하였다.
或(ある)日は種畜場のらんまんとした花見のやうにきらびやかな彼等の生殖をながめたりした。
二つの発光体が青草の上に、無数の肢をいりみだしてたちあがる有様は田園に住む人々にのみ見ることのできる勇壮なけもの[#「けもの」に傍点]の生殖であり、乱舞する青春の唐草模様、冬はまた冷却の地上にまつ黒い橇の疾走は厳粛な軽快味と灰色の壮重味を漂はし、その首の鈴の音は冷たく明るい赤色の連続されたロシア風の『ラズベリーの色のやうな響き』を薄明(うすあ)けの空に戦慄してゐる星の地上に水銀のやうに流して私の愛馬は雪を懸命に駈けた。
어느 날은 種畜場의 爛漫한 꽃구경처럼 화려한 그들의 生殖을 바라보기도 하였다.
두개의 發光體가 靑草위에 無數한 다리를 어지럽게 들여 넣고서 일어서는 모습은 田園에
사는 사람들에게만 볼수가 있는 勇壯한 짐승의 生殖이며 亂舞하는 청춘의 唐草模樣,겨울은
또 냉각의 새까만 雪皮의 疾走는 엄숙한 輕快味와 灰色의 壯重味를 떠돌게 하고 그 목의
방울 소리는 차갑고 밝은 赤色이 連續돤 Russia風의 <raspberry色과 같은 울림>을 薄明의
하늘에 전율하고 있는 별의 地上에 水銀처럼 흘러서 나의 愛馬는 눈을 열심히 달려 갔다
(下) 虚無主義の食餌
実在の餌に食傷し架空とまで罵しられる私の空に駈ける奔放な馬は実在の柵外の新しい疾走を愛好する、奇怪な私の個性が車輪のやうに廻転する。北方の馬の疾走は温暖に育まれた南方の馬に比して直線的で熱烈で強固なものである理由は久しく氷の地上に生活した悲惨なる恩恵悲壮なる賜ものでなければならない。
(下) 虛無主義의 먹이
實在의 먹이에 食傷하여 架空이라고 까지 매도되는 나의 하늘에 달리는 奮放한 말은 실재의
柵外의 새로운 疾走를 愛好하며 기괴한 나의 개성이 車輪처럼 회전 한다.北方의 말의 疾走는
溫暖하게 자란 南方의 말에 비하여 直線的이고 熱烈하며 强固한것이라는 이유는 오래도록 얼음
地上에서 생활한 悲慘한 恩惠 悲壯한 賜인것이 아니면 안된다.
よく晴れた日の雪を視てゐると、その雪層は青と見える。青い色は뿅?#28288;足の安静さ――ではなく限りなく超自然的な深みであり終結するところのない超感覚的に冷却された無限の世界を脚下に見る。
無益な銃器を売りはらつて
酒乱となれ若者よ
軍服も質にいれて
凍えて死んでしまへ
私の兵士
흔히 화창한 날의 눈을 보고 있으면 그 雪層은 靑으로 보인다.파란 색은 자기만족의 安靜함____
은 아니고 한없이 超自然的인 깊이이며 終結하는 곳이 없는 超感覺的으로 냉각된 無限의 세계를
脚下에 본다.
無益한 銃器를 팔아 버리고
酒亂이 되어라!젊은이여!
軍服도 저당을 잡히고
얼어 죽어 버리게!
나의 兵士!
青衣を着たる我等北方人よ、青馬にまたがる若々しい騎手よ。
冷却された青色の地上に食餌をもとめる北国人は、どれほど日夜悲しき幸福を味覚してゐるか。
私の兵士は愚かなる戦争に荷担をするな、たゞじつと手を組んで愛する青馬の思想に思策せよ。
靑衣를 입은 우리들 北方人이여! 靑馬를 탄 젊은 騎手여!
냉각된 靑色의 地上에 먹이를 구하는 北國人은 어느만큼 밤낮으로 슬픈 행복을 味覺하고 있는가?
나의 兵士는 어리석은 전쟁에 짐을 지지 말게!그저 가만히 손을 잡고 사랑하는 靑馬의 사상에
思策하라!
見ろ彼等の煙筒はぐん/\と伸びてゆき都会の上空は林のやうだ、気笛は彼等の凱歌であり車輪が手をのべて俺達の胸を毎日しめつける。しかしどれほど彼等の激しい射撃をうけても、我等の兵士は永久に馬の思想でなければならない。
都会の屋上に血のやうなペン/\草が生えるまで、だがあるひはこの屋上の壊滅も永久に到来しないかも知れない。
보라!그들의 煙筒은 쭉쭉 뻗어 나가서 도시의 上空은 숲과 같으며 氣笛은 그들의 凱歌이며 車輪이
손을 뻗어서 우리들의 가슴을 每日 죄어 든다.그러나 아무리 그들의 激한 사격을 받아도 우리들의
兵士는 永久히 말의 思想으로 되지 않으면 안된다.
도시의 옥상에 피와 같은 냉이가 자랄때 까지, 허지만 어쩌면 이 옥상의 壞滅도 永久히 到來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雪を馳けてゐるのである
血である
樹木は血である
葉も血である
太陽は雪の中で光りながら、穏かな明りを雪の中にひろげた、銀と白との中間に漂ふものゝ姿漂ふものゝ線はみな血である雪野は涯しない人はちいさい樹木は慄へてゐる。
生存の眼に見えるものゝ悲しい線は潜まりきつた血となつて嵐のやんだ雪を流れてゐる。
눈을 달려가고 있는것이다
피이다
樹木은 피이다
잎도 피이다
태양은 눈속에서 빛나면서 온건한 밝기를 눈속에 펼쳤으며 銀과 白의 중간에 떠돌면서 떠도는
線은 모두 피이며 雪野는 끝이 없고 사람은 작고 樹木은 전율하고 있다.
生存의 눈에 보이는것인 슬픈 線은 숨어 버린 피가 되어서 폭풍이 그친 눈을 흘리고 있다.
私の青馬は純白な血の中に生長してゐる感激の日常でなければならなぬ。
第一の樹木の目標
第二の樹木の目標
第三の樹木の目標
第四の樹木の目標
第五、第六、第七の目標後は地平の雪線に隠れて見えない、なんと連続した悲しい『橇と馬』との日課であることか、新鮮な雪に躍りこんだ橇、凍結して私の青馬の大きな感覚がまつすぐに鈴を鳴らして転げてゐる。
나의 靑馬는 純白의 핏속에 生長하고 있는 감격의 日常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第一의 樹木의 目標
第二의 樹木의 目標
第三의 樹木의 目標
第四의 樹木의 目標
第五,第六,諸七의 目標後는 地平의 雪線에 숨어서 보이지 않으며 무엇과 連續한 슬픈<雪皮와 말>
과의 日課인것인지 신선한 눈에 뛰어든 雪皮,凍結하여 나의 靑馬의 커다란 感覺이 똑바로 방울을
울리면서 구르고 있다.
私の青馬は目標のない旅行、憂鬱な雪の季節の連続、滅亡の荒野を疾走する黒い橇の旅行者のまいにちの食餌はどんなものか苦悩、憤恨、憎悪、飢餓、哀愁の血である。あゝ私の青馬は雪を喰べて丸々と肥えろ、これら忿懣の食餌は虚無主義の血となる。永遠の沈黙である血脈の内面的な不断の進軍を続ける孤独の王者である、――街角にいつぴきの馬がたつてゐる、なんといふそれは大きな虚無主義の顔であるだらう。
나의 靑馬는 目標가 없는 여행,우울한 눈의 계절의 連續,멸망의 황야를 疾走하는 검은 雪皮의
여행자의 每日의 먹이는 어떤 것인가?苦惱,憤恨,憎惡,飢餓,哀愁의 피이다. 아!!나의 靑馬는 눈을
먹고 포동 포동 살 찌거라!이러한 忿懣의 먹이는 虛無主義의 피가 된다. 영원한 침묵인 血脈의
內面的인 不斷의 進軍을 계속하는 고독한 王者이며___거리 모퉁이에 몇마리의 말이 서 있으며
뭐라 할까!그것은 커다란 虛無主義의 얼굴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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